2013년 2월 25일 월요일

세렝게티 초원의 사내 / 서동균

세렝게티 초원의 사내 / 서동균

찰칵찰칵 슬라이드 필름이 스크린에 분광되고 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전봇대를 잡고
전력질주를 한 세렝게티 초원의 치타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순간 시속 100킬로를 주파하고 나면
하늘이 노랗게 어지럼증을 느낀다
한 장 한 장 흑백필름이 스크린을 메운다
강소주를 서너 병 마셔도 거뜬했던 시절은
저렇게 흑백이었을까
칠성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할 때는
몸이 가벼워야 한다고
술만 마시면 게워 내는 사내는
이제 초원을 달려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동시상영관의 영사기처럼 돌다가 그대로
부숴질 수 있다는 것을
수십 번을 보고 나서야 알아차린 사내
전봇대를 붙잡고 여전히 제 무게를 게우고 있다
2011년 계간 <시안> 가을호에서 발췌
2012년 웹진 <시인광장> 21세기 한국시단 코너에 재수록

서정윤의 ´축복´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