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목욕

어머니의 몸에
천 여칸의 회랑을 세웠던 아버지
창고마다 그득한 공양미 씻으면
십여 리 떨어진 개울까지
쌀뜨물이 흘러갔다는 영화는
이제는 간 데 없고
버려진 사찰의 臥佛처럼 누워 있다
고치 속에 있던 것들
날개 펼치고 모두 떠나간 뒤라
흉가의 집안이 괴괴하다
폐허의 몸에
어떤 손길이 닿아야 온기가 되살아날까
아버지, 옷 벗으세요
일년 내내 목욕 한 번 안 하셨을
저 살갗에 낀 이끼를 걷어내고
녹을 긁어낸다
낡은 목숨에 기생하였던 살마저
세찬 빗줄기에 머리 맞은 열매처럼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아버지, 무너진 석탑 같은
뼈만 남았어요
세월의 무게로 사라진 유물 같은
당신을 찾아
발끝까지 씻고 머리 감아드리니
얼굴에 발갛게 꽃이 피네
산사의 새벽처럼 생기가 피어오르네
누워 잠든 저 와불의 숨소리가
햇살 비치는 적멸보궁 찾아가는 길 같아
나도 대문 닫아 걸고
오랜만에 몸 깨끗이 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