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1일 월요일

비망록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물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일 아닌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일 없었던 스물네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같은 사내와 좀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 줄는지. 아무일 아닌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지우지 않도록.
저에게 메모를 남기신 김산해씨를 찾아요.. 왜 멜 주소도 남기지 않으셨는지.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멜 주소 남겨주세요.
저도 한문으로 ´시´ 자 잘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