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6일 화요일
신달자의 ´어머니의 땅´ 외
<어머니의 위대한 힘에 관한 시 모음> 신달자의 ´어머니의 땅´ 외
+ 어머니의 땅
대지진이었다
지반이 쩌억 금이 가고
세상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순간
하느님은 사람 중에
가장 힘 센 한 사람을
저 지하 층층 아래에서
땅을 받쳐들게 하였다
어머니였다
수억 천 년
어머니의 아들과 딸이
그 땅을 밟고 살고 있다
(신달자·시인, 1943-)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정한모·시인, 1923-1991)
+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시인, 1948-1991)
+ 해빙
아기를 낳은 후에 젖몸살을 앓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과
수시로 찾아드는 오한 속에서
밤새 뜨거운 찜질로 젖망울을 풀어주시며
굳었던 내 가슴을 쓸어주시며
기도하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땀이 나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다
가장 깊은 속 완고했던 응어리들이 풀릴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맺혔던 젖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가슴위로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젖이 아니었다
잊혀져 가던 옛사랑이었다
어둠에서 나를 이끌어 낸 것은
주님이 아니라 어머니 속의 어머니
새벽이 되자 열이 내리고 젖이 풀리면서
나는 이제야 어머니가 된 것이다
(나희덕·시인, 1966-)
+ 어머니 연잎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게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동란 때 그러하셨듯
산에서 내려온 아들놈 마루바닥 아래 숨겨두고
그 위에 눌러앉아 방망이질하시던 앙다물던
모진 입술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머리맡에서
꼬박 밤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최영철·시인, 1956-)
+ 어머니의 편지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 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시인, 1947-)
+ 어머니
새벽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老母)의
굽어진 등 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겨진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山) 하나 들고 있다.
(김윤도·시인, 196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정일근의 ´어머니의 못´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