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4일 월요일

정세훈의 ´자본주의´ 외


<세태 시 모음> 정세훈의 ´자본주의´ 외

+ 자본주의

그래
돈 내면 되잖냐.

침 뱉고 싶을 때
침 뱉고,

오줌 깔기고 싶을 때
오줌 깔기고서.
(정세훈·시인, 1955-)


+ 땅

태초에 하나님 가라사대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있었고

그후,
속절없이 하나님 가라사대
땅 위에 충만하라 하니
복부인, 복남편, 복자식
모두 나와 복덕방에서

땅 따먹기 하니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임희구·시인, 1965-)
+ 일회용 시대

사발면을 후루룩 마시고
일회용 종이컵을 구겨서 버리는 것처럼
상처가 아물면
일회용 반창고를 딱 떼어서 던져넣은 것처럼

이 시대에
내가 누구를 버린다 해도
누구에게서 내가
버림받는다 해도

한번 입고 태워버리는 종이옷처럼,
한번 사용하고 팽개쳐야 하는
콘돔처럼,
커피 자동판매기 안에서
눈을 감고 주루룩 쏟아져 내리는
희게 질린 종이컵처럼
껌종이처럼 설탕포장지처럼
그렇게
내가 나를 버릴 수 있을까
그렇게
나도 나를 버릴 수 있을까

어느 으슥한 호텔 욕실에서
잠깐 쓰고 버려지는
슬픈 향내의
일회용 종이비누처럼...
(김승희·시인, 1952-)
+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시인도 가짜가 있다
그도 배웠다는 자들 속에

시도 돈 10만 원만 주면 만들어준다는 유명 시인
시집 한 권 내려면 아마
돈 남아도는 위인들은
천만 원 어느 유명 시인에게 건네주면
시 한 편에 10만 원으로 만들어주어
백 편이면 천만 원 조용히 앉아만 있어도
시집 내준다

등단 시도 모조리
심사위원에게 돈만 300만 원만 주면 고치어
등단시켜준다는 가짜 심사 위원
그들이 대학교수란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시인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나은희·교사 시인, 1957-)
+ 골뱅이 찬가

셀 수 없이 토막나
양파와 오이에게 두들겨 맞고
눈물 흘리며 초장에 버무려진 후
불어터진 사리 속에 숨겨진 이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인간에게
꼭꼭 씹혀 개운함 심어주고
오늘을 깨우라는 그 이유

빗나간 민주주의
한번 씹어보자
복날에 설사를 만나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자
흘린 땀이 미소되어 돌아오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씹어서 삼켜보자
(윤형식·시인)
+ 명백한 놀이를

어른들은 이상해요
우리 아이들은 가령 병정놀이나 전쟁놀이를 할 때
정말 죽이거나 정말 죽는 게 아니라
죽은 걸로 하고, 이기고 지는 것도 그냥
이긴 걸로, 진 걸로 하는데, 어른들은 정말 죽이고
승패를 막론 다만 지옥을 만들거든요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에요. 어떤 시인이 어떤 사관학교에 가서
막무가내로 붙잡혀 사열을 받았는데
도무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고 도무지 온몸이 근질근질...
아, 이 명백한 놀이를 이다지도 무게잡고, 이다지도 엄숙하게
하는구나, 참 한심하기도 하구나 하는,
그냥 바라볼 땐 못 느끼던 걸 실감했는데요...
하느님, 이 세상은 그냥 이렇게 굴러가겠지요만, 정치, 군사
할 것 없이 다만 어른들의 놀이에 불과한 짓을 놀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서 이 세상에는 불행이 끊이지 않는다는,
그저 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현종·시인, 1939-)
+ 진부

미시령 터널이 생기고부터 진부령은 진부해졌다
셈이 빠른 도시인들은 구태여
굽이굽이 진부를 돌아 넘지 않는다

초고속 인터넷이 생기고부터 느린 단어들은 진부해졌다
약삭빠른 젊은 시인들은
꽃과 구름, 어미와 누이를 돌아 넘지 않는다

귀농 삼 년, 귀향 삼 년의 농부 둘과 시인 하나,
동갑내기 초짜 셋이서 의기투합 진부를 넘는다
고갯마루 길섶 넝쿨 위로 구불구불 칡꽃 향기 가득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만, 다
취했다
(박제영·시인)
+ 요즘 사람들은 매일 붕대를 감는다

사철 한파에 몸을 움츠린 채
전철에 빼곡이 채워져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병사들처럼 출근하는 사람들
엘리베이터를 바삐 오르내리고
전화를 걸고 컴퓨터를 두드리면서
서로가 거리를 두고
계산하고 경계하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몸 어딘가엔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의 덫과 화살 피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매일 붕대를 감는다
(손상근·시인)
+ 그러나 가끔은

정치인이 빠져죽은 강물을 먹어도 누구하나 배탈이 나지 않는
하나를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수천을 죽이면 영웅이 되기도 하는
첩을 수십 거느리고 있어도 재력만 있으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물고기가 배를 뒤집은 채 거품을 뿜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질주하는 자동차가 그리는 시체그림을 길만 나서면 감상할 수 있는
시인만 되면 시 안 쓰고도 시인행세를 할 수 있는
강심장의 나라

그러나 가끔은
풀벌레 울음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가슴
그런 가슴들이 이 나라를 지탱한다고 믿기도 하는
(원무현·시인, 1963-)
+ 세계화

예전의 세계화는 중국화였다.
吾等이 玆에 朝鮮이 獨立國임을 萬邦에 宣言하노라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화다.
와이프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나는 스킨로션을 바르고
프랑스에서 살던 딸과
소나타를 타고 롯데 백화점으로 갔다.
베이스 파킹 에리어에 파킹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에 이르니
INFOMATION에 쌕시한 안내걸이 인사를 한다.
해피 베이비에 가서 아동복을 사고
프라이데이에서 비프스테이크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리치몬드에 가서 생크림 케이크를 샀다.
엘지 마트에 들르니
Happy New Milinium 프랑카드가 붙고
Sale 이라는 마크가 사방에 붙었다.
아기 분유인 임페리얼을 사고
Y2K 코너에서 생수와 라면을 사고
저녁에는 아이들의 해피버스데이를 들으며
59회 생일 케이크를 잘랐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들어가 웹서핑을 하고
밤에는 티브이에서 멜로드라마를 보고
저녁에는 네트라는 시네마를 보고
베드에서 잠을 잤다.
오늘은 해피했다.
(녹암 진장춘·시인)
+ 풀잎 다방 미스 조 - 두려운 미움

풀잎다방 미스 조는 커피 자동판매기가 밉다
마담 민언니는 하루하루 배달 주문이 줄어든다고 걱정인데
종종걸음으로 업무용 가방을 들고 커피배달에 나서다보면
여기저기 늘어나는 예쁜 커피 자동판매기가
미스 조의 발길을 자주 멈추게 한다
교보빌딩 최건축사 사무실 코아빌딩
10년 단골이라 자랑하던 현대세차장 입구에도
어느새 커피 자동 판매기가 서 있다
풀잎다방 미스 조는 저 커피 자동판매기가 밉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시간에도
자신이 퇴근한 후에도 한 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에도
지치지 않는 튼튼한 몸매로 자신의 단골손님을 유혹하는
커피 자동판매기가 미스 조는 밉다
풀잎 같은 풀잎다방 미스 조는 사남매의 맏이
고향 서산바다 섬마을엔 병든 어머니와
처마 낮은 남루한 도단집 한 채
막내가 올해 전문대학에 들어갔는데
한 2년 밤이면 통통 붓는 아픈 다리 참고 걸어가면
고단한 이 길도 끝이 날 텐데
그때 전생의 인연이 닿는 그 사람 만날 수 있다면
작은 방 한 칸에도 만족스러운 착한 아내가 되고 싶은데
자신의 작은 소망에 발을 거는 저 커피 자동판매기가
풀잎다방 미스 조는 밉기만 하다
시든 풀잎처럼 힘겹기만 한 늦은 퇴근길
잠들지 않고 홀로 서 있는 커피 자동판매기가
어두운 골목 뒤따라와 자신을 덮칠 것 같아
2년 만기 평화은행 적금통장을 그냥 빼앗아가 버릴 것 같아

이제는 두렵기만 하다
커피 자동판매기 동전 투입구 속으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빨려 들어가 끝없이 주르르 쏟아질 것만 같아
풀잎다방 미스 조는 무섭기만 하다.
(정일근·시인, 1958-)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복숙의 ´하늘이 보이는 때´ 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