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9일 토요일

오줌장군이 넘어지던 날

내 기억의 맨 끄트머리쯤, 앞 마당에 바쳐놓은 지게 옆에서 뛰놀다가
작대기를 살짝 건드렸는데, 글쎄 지게가 고꾸라지면서
가득 찬 오줌장군이 박살나고 말았지 뭡니까. 그것도 이웃집 건데,
불안에 떨던 나는 그토록 무서운 아버지 모습은 세상에서 처음 보았어요
저녁밥도 굶은 채 세상 밖으로 쫓겨나 뒷간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얼마나 섧디 섧게 울었는지, 아무리 크게 울어도 아무 인기척도 없고......
이빨 부딪는 소리를 참을 길 없어 썩은 볏짚 단을 끌어 안아 보지만
내가 내는 소리나 몸짓은 겨울 바람이 낼름 삼켜버리고
노을이 지는 쪽으로 작은 세상의 한 귀퉁이가 마구 무너져내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뒷간 옆 마늘 밭은 그 엄동에도 파릇하니 싹을 틔우고 있더라고요
(마늘 맛이 그래서 독한 것인지). 느즈막에 깐 마늘 같은 어머니 손길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내 싹은 얼어죽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