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9일 토요일

라일락 그물 / 임영준

우리 함께 무심히
봄볕을 따라 걷다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라일락꽃 그물에 덜컥
걸려들고 말았지

다 제쳐두고 지체하면서
입에 물기도 하고
행복에 겨워
파묻히기도 하다가
정원 가득 라일락을 심어
늘 취해보자 약속도 했었지

헤아릴 수 없고
헤아리기도 버거운
젊은 날의 소망이라기엔
너무도 진한 향기다발이었지

허나 나는 아직
그 그물 속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너는 그 향기를 뿌리치고
너울너울 속절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

세상 곳곳을 물들이고
발길을 잡아끄는 라일락에
왜 우린 그냥 순일하게
한평생 어우러질 수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