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1일 목요일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