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4일 목요일

빛, 저 빛 때문이다

빛, 빛 때문이다
내 목을 치고 달아나는 저것
숨어 꽃 핀 자리 어찌 저리 밝은지
저 빛, 비밀의 저 빛 때문이다
어둠의 심장을 갈라놓는
저 제비꽃, 저 오랑캐꽃
저기 저 꽃 한 송이 때문이다
무너진 토담 밑에서
개울가 언덕 위에서 해와 달과
겨울과 여름 그 틈 사이
천둥소리 벼락소리로 일어선
저 꽃의 빛 때문이다
메마른 땅에 핀 꽃의 빛이여
너는 이미 가련하게 시들어 버렸구나
흐르는 냇물에 꽃을 버린다
내가 버린 나의 유년처럼
저 세상 어디 멀리
안 보이는 곳으로 가 버리라고
물결 따라 남실거리며
아득히 멀어져 가는 나의 꽃이여
나의 빛이여
빛, 저 빛 때문이다
꽃의 몸을 물어뜯는 저 물의 빛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여있다 터뜨린 꽃의 빛을
풀어헤치려는 저 물의 아우성 때문이다
저 흐르는 물의 빛은
꽃의 관이다 꽃의 무덤이다
아, 저 빛, 빛 때문이다
예쁜 새 한 마리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슬피 우는 것
저 빛, 꽃의 빛 때문이다
저 빛, 꽃을 품은
저 물의 빛 때문이다 저 물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