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5일 월요일

신복순의 ´채송화에게는´ 외


<동시 속 하느님> 신복순의 ´채송화에게는´ 외

+ 채송화에게는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은 채송화
나를 하느님인 줄 안다

비 좀 내려 주세요
바람 좀 불게 해 주세요

가끔 나타나
물조리개로 흠뻑
비도 내려 주고

창을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도 불게 하는
채송화에게는 내가 하느님이다
(신복순·아동문학가)
+ 흙 한 줌

아무렇게나 버려진
흙 한 줌
제비가 물고 가서
제비집 만드는데 쓰고
아기가 가져가서
흙구슬 만드는데 쓰고
하나님이 보시고는
새싹 하나 기르신다.
(전영관·아동문학가)
+ 부탁합니다

하느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해 주세요.

그래야
손뼉이 쳐지잖아요.
잘한다고 맞장구도 쳐주잖아요.
(손동연·아동문학가)
+ 아침 인사

아! 잘 잤다.
하느님도 잘 잤어요?
어젯밤에 뭐라고 기도했더라?
생각 안 나도
꼭 들어주셔야 해요.
(이옥용·아동문학가)
+ 싸락눈

하느님께서
진지를 잡수시다가
손이 시린지




자꾸만 밥알을 흘리십니다.
(김소운·아동문학가, 1907-1981)
+ 하느님의 실수

하느님!
빨강, 주황, 노랑, 분홍 장미는
다 있는데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장미는
왜 안 만드셨어요?
(송예진·서울 계남초등학교 3학년)
* 2004년 제3회 한국 어린이 시문학상 수상작품집
+ 아침입니다

닭들이 눈을 뜨면
꼬꼬꼬꼬, 강아지에게 인사하고

강아지가 눈을 뜨면
멍멍멍, 시냇물에게 인사하고

시냇물이 눈을 뜨면
졸졸졸, 자동차들에게 인사하고

자동차들이 눈을 뜨면
빵빵빵, 해님에게 인사하고

해님이 눈을 깜빡깜빡 앞산으로 오르면
아침입니다.
손 큰 하느님이 얼른 일어나 후다닥 내려놓으신
시골마을 아침입니다.
(김문기·아동문학가, 1962-)
+ 감씨

감씨 속에는
조그만 삽이 하나
들어 있지.

봄철 씨앗이
기지개를 켜고
세상에 나올 때

고걸 들고
영차영차
흙을 파고 나오라고

하느님이
조그만 삽 하나
선물했지.
(김진광·아동문학가, 1951-)
+ 나무의 귀

바람이
나무의 귀를 닦아주었습니다.

햇살도 귀를 어루만져 주면서
˝너는 좋은 말만 들어야 돼.˝
˝좋은 말만 들어야 돼.˝
하고 손까지 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예쁜 꽃과 잎을 피웠습니다.

하느님은
나무가 좋은 말만 듣는다고
꽃향기까지 하나 더 주었습니다.

그래선지 라일락나무는
지금까지
바람의 속삭임과 햇빛의 고운 결로만 짠
보랏빛 연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하늘 위의 창문

방패연을 높이높이
띄웠다

하늘 위에 커다란
창문이 하나
생겼다

저 창문을 열면
하늘 위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내다볼 수 있겠다
하느님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훤히 다 보이겠다

방패연은 좋겠다
저러다
운이 좋으면
하느님도 만날 수 있겠다
(안도현·시인, 1961)
+ 하느님의 물뿌리개

하느님은 물뿌리개를
몇 개나 갖고 계실까?

봄에는 보슬보슬
여름에는 주룩주룩
가을엔 부슬부슬
겨울엔 풀- 풀-
눈송이 뿌리개가 따로 있나 봐.

계절마다
꼭 꼭 맞춰서
꺼내 쓰시는 걸 보면.
(윤이현·아동문학가, 1941-)
+ 장마

하느님도
우리 엄마처럼
건망증이 심한가 보다
지구를 청소하다가
수도꼭지 잠그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다
콸콸콸‘,
밭에 물이 차서
수박이 비치볼처럼 떠오르고
꼬꼬닭도 알을 두고
지붕 위에서 달달 떨고
새로 산 내 노란 우산도
살이 두 개나 부러졌는데
아직도 콸콸콸콸
하느님, 수도꼭지 좀 잠궈 주세요.
(조영수·아동문학가, 충남 유성 출생)
+ 밭 한 뙈기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아동문학가, 1937-2007)
+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임길택·시인, 1952-1997)
+ 엄마와 하느님

하느님이 손가락을 주셨는데 엄만 ˝포크를 사용해라˝ 해요
하느님이 물웅덩이를 주셨는데 엄만 ˝물장구 튀기지 마라˝ 하고요
하느님이 빗방울을 주셨는데 엄만 ˝비 맞으면 안 된다˝ 해요
난 별로 똑똑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엄마가 틀리든 하느님이 틀리든 둘 중 하나예요.
(셸 실버스틴·미국 작가, 1930-199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