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미천골 산기슭에
바투 앉은 천년 절을 찾는다
어느 날 큰물이 나서
흙더미에 묻혀 사라졌다고
저만 남은 석탑이 한 마디 한다
몸돌 사라지고
돌거북과 용머리만 남은 비석에
햇살 한 자락 깔렸는데
점심 공양한다고
살뜨물이 속세까지 흘러갔다
밥 한 술 뜨고
부처도 없는 절터에
잠깐 기대어 눈 감는데
주춧돌 위로 기둥 세우고
기와를 올려 놓았다
추녀 끝에 눈 쌓인 풍경이 걸렸다
목탁 소리가 산을 흔든다
내게서 산사태가 일어난다
독경 소리가 허공을 흔든다
내게서 빙벽이 떨어져나간다
내 안에 적멸보궁 하나 지었다가
대웅전 하나 무너뜨렸다가
내 안에 미륵불 하나 안혔다가
보살 하나 눕혔다가
하안거 들었다가 동안거 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갓 피어 오른 연꽃 받침돌 위에
내가 부도로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