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3일 수요일

이해인의 ´행복의 얼굴´ 외


<행복 시모음> 이해인의 ´행복의 얼굴´ 외

+ 행복의 얼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어디에 숨어 있다
고운 날개 달고
살짝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행복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행복을 비는 노래

내 앞에 행복
내 뒤에 행복
내 아래에 행복
내 위에 행복
내 주위 모든 곳의 행복
(나바호족 인디언의 노래)
+ 행복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도
비에 흠뻑 젖을 수도 없잖아

누구를 기다릴 수도
누구에게 버림받을 수도 없잖아

죽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피는 꽃잎에 입맞춤할 수도
지는 꽃잎에 서러울 수도 없잖아

나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눈물을 흘릴 수도
한숨지을 수도 없잖아

삶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도
살아서 누리는 행복
(정연복·시인, 1957-)
+ 행복

난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남을 억누르며 못살게 구는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그러한 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난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그 무엇보다도
내 육신이 언제나 남에게 얻어터질 수 있는
아주 작은 볼품없는 몸뚱아리라는 것이

그리하여, 남을 하나도 때려눕힐 수 없다는 것이
(정세훈·시인, 1955-)
+ 행복의 무게

겨우내
장바구니 가득해도
배부르고 넉넉해지는
행복이다
세상에는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욕심을 버린다면
하루 벌어 하루 먹어도
행복이다
이 순간까지 살아 있어
행복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생이
더욱 행복이다
행복은
그림자도 밝다
(최호림·시인, 1939-)
+ 삶의 기쁨

이 세상에는
아주 작은 행복이
너무나 많다

너무나 작아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 조각들을 붙여가며
큰 행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행복은 짧다

꽃잎이 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행복은 짧은 법이다.
꿈을 위해 말없이 행복을 떨구는
꽃잎은 누구보다 아름답다.
물길을 딛고 선 뿌리와
사철 햇살을 이고 사는 푸른 잎들도
하루 꽃을 위해 몸을 던진다.
행복이 짧다고 슬퍼하지 마라.
밤새워 쓰던 긴 편지보다
만남의 기쁨은 짧지 않던가.
우리가 가는 길이 그러하듯이
언제나
꿈보다 행복은 짧은 법이다.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죽음의 행복

흰나비야
그렇게도 후박꽃 향기가 좋더냐
향기 속에 푹 파묻혀
생명까지 묻어 버린
너는 행복하여라

달콤한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고
누가 생의 종말을
꽃 속에서
달콤한 향기 속에서
생의 날개를 접을 수 있으리

너는 죽었어도 행복하여라
인생도 꽃의 향기에 취해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리
(이승구·시인)
+ 행복론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최영미·시인, 196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박용주의 ´목련이 진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