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아들아
여태껏 내 삶에 지쳐
아픈 이웃들 돌볼 새 없이 살았으니
남기고 떠날 이름 석 자조차 부끄럽구나
내 마지막 그날에
병들고 시든 몸뚱어리
무어 쓸모가 있으랴마는
간이든 콩팥이든 눈이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주고 떠나련다
모두 주고 더 줄 것이 없으면
고된 삶에 허우적거리다가 병든
마음 좋은 사람들의 새 삶을 위해
의학 실험용으로 쓰게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되거들랑
불에 살라
내 어릴 때 뛰어 놀던 뒷동산에
재라도 뿌려주려무나
살아서 베풀지 못한 내 사랑은
죽어서나 이루어질까
세상 슬픈 일들이야
곧 잊고 살더라도
이 못난 아비 부탁만은 잊지 말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