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4일 토요일

천수관음 겨울나무

관음사 올라가는
길가의 겨울나무가
아하,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닮았네
천 개의 손을 길게 뻗어
연신 합장을 하고 있네
저 손짓 하나 하나가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手印이네
저 겨울나무 같은 나도
청춘의 잎으로 갈아 입고
온 동네 쏘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몸속에 벌레 들끓어
밤 꼬박 새우던 시대가 있었으리라
단풍으로 물들은
내 안의 귀신 쫓아내겠다고
고함 지르며, 비명 지르며
낙엽처럼 뒹굴던 때가 있었으리라
마침내 눈을 잃고 혀를 잃고
무릎 꿇은 채로
눈물 같은 열매 떨어뜨렸으니
빈 몸으로
수 없이 펄럭이는 마음을 전하네
저것이 귀로 들어야 하는
수화手話 같아서
천 개의 손짓 같은 말씀을 보아야 하네
겨울나무의 경전을 읽어야 하네
동안거에 들어간 나무의
독송을 귀담아 들어야 하네
먼 우주에서 들려오는
암호를 해독하고 있네 겨울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