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천상병의 ´귀천´(歸天) 외


<천국에 관한 시 모음> 천상병의 ´귀천´(歸天) 외

+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천국의 꿈

흰 구름
내려앉아
수평선 파도를 탄다.

동화의 나라
아이들이 종이배 꿈을 싣고
돌고래 휘파람 소리
갈매기 너울너울 춤추면

너는
천국의 꿈
은빛 꽃피운 하늘
물보라 하얀 설렘 동해바다
불태운다.
(장수남·시인, 1943-)
+ 동행

한 점 얻어먹어 보겠다고
뒷집 새댁 부탁으로 닭 모가지를 비틀어본 적도 있는데
아내 잘못 만나
파리 한 마리 잡는데도
관세음보살한테 허락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러다 잘하면 나도 극락 가겠다
(복효근·시인, 1962-)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배불리 만족할 것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가슴이 순수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신을 볼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신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의를 위해 박해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예수, 마태복음 5장 3-10절)
+ 내가 만든 천국

겨우내 발가벗은 나무, 그 막힌 응어리를
따스한 손으로 잡아주고 간 자리,
그제야 가슴을 열고 푸르게 웃는다.

이 세상 가난과 슬픔의 길을 지나
우리, 저토록 참고 견디는 슬기를 배웠다면
기억할 수 있는 삶의 층계가 더 높았을 것을,

초봄 양지 바른 곳 차지하고
보송한 얼굴에 야릇한 웃음 띠고 지나가는
곱단이를 보고 있으면,
눈에 잡히는 깊숙한 관능의 힘이 전해오는데
저런 게 울림의 사랑이었나?,

황당한 간음을 숨기고 볕을 따라가는 사이,
토방에 초록색 물감으로 한 상
푸짐한 밥상을 차려놓고 손짓하는
아내의 가슴이 환하게 밀려오는 그때쯤,

봄을 물고 오는 산 제비 낮게 나르면
톡톡 피는 매화는 한 줌 그리움이 되고,
내가 만든 천국의 길은 이제부터 기쁨이다.
(박종영·공무원 시인)
+ 천국은 그대 안에

어둠이 갈수록 짙어져
동공들이 분노로 번들거립니다
폭발하는 여린 별들을
더는 다독일 방도가 없습니다
구원을 바라는 가련한 이들보다
제 앞가림만 밝히는 상전들 때문에
神도 손을 놓아버린 듯합니다
함께 모여 갈구하는 마당마다
사악한 벌레들이 더욱 기승을 부려
엄벙덤벙 끼어들기도 두렵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저마다의 안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 안에 구원과 천국이 있으니
외롭고 두려운 미물이 될지라도
쉬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무엇이든 캐내어야 합니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천국으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기차
예매가 시작되었다네
인터넷 구입이 마감되고
암표마저 동이나
다른 교통편 알아보느라
세상은 난리북새통이네

아무리 천국이라 해도
급행으로 갈 일 무에 있나
이 몸은 추억 가득 든
배낭 들쳐 메고
운동 삼아 걸어서 하늘까지
자늑하게 가려네

비록 지연되어
마중 나온 사람
지쳐 널브러지고
하늘나라 신천지 등기부
내 땅 확보 무산되어도
무심하게 가려네

천국으로 가는 동안
꽃잎 사복사복 밟히는
쌔뜩한 무지개 길 따라
미리내 곳곳 여행하며
길 걷다 손 흔들어
구름사다리 얻어 타려네

천국으로 가는 길
사랑하는 이 동행한다면
멀면 멀수록
늦으면 늦을수록
나는 그저
행복할 뿐이네
(공석진·시인)
+ 바보 천국 가다

비실이 배삼룡
우리 시대 최고의 광대

웃으면 복이 와요
넘어지고 자빠지고
깨어지고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희극계의 대부
비실이 배삼룡

힘들고 지친
우리 가슴에
시원한 청량음료를
웃음이라는 여유를
심어준 바보 배삼룡

바보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준
큰 별 배삼룡 지다

바보가 절실히 필요한
이 시대
바보의 원조
이젠 전설이 되었다.
(이문조·시인)
+ 천국의 오리 - 뉴질랜드 문학기행

지구에 사는 오리들이여
길을 찾을 수만 있거들랑
뉴질랜드로 날아가거라
왜냐고 묻지도 말고, 눈감고 달려가거라
그곳에서 보장받는 삶은
뭍이든, 호수든 천국이다.
나는 보았노니
동물농장, 푸른 초원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너의 동족이
종종 걸음으로 활보하여도
커다란 동물의 발에
채이지 않고, 밟히지도 않고
동물의 먹이를 함께 나누어 먹는 평화를
나는 들었노니
너희 형제 중 단 한 마리라도
건드리는 자는
내국인이면 경찰서로, 외국인이면 본국으로
송환된다는 것을
오리들이여, 이런 땅이라면
천국이 아니겠느냐
(김윤자·시인, 1953-)
+ 천국생활

어둠이 내리는 길을 가다가
커다란 종이 박스를
힘겹게 들고 가는 노인을 만나
품 삼아 들어주었더니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데
하면서 고마워한다
용산역 툇마루를 넘어 전자랜드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위에 섰다

여기까지 도와주셔서 고맙소
노인의 말소리에 의아해 있는 나에게
이 박스가 나를 재워 줄
궁전이거든요 하면서

종이 박스를 이리로 저리로
바닥을 만들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씌우고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하는 말

그냥 가시려오
들어와 쉬어 가시려오......
(김길남·시인, 1942-)
+ 하늘나라

어머니,
세상길 그만두고
가실 때

´하늘나라에 있으마,
보고 싶으면,
뒷날 거기로 오너라.´

눈 위에 손을 얹고 바라보아도
푸른 하늘에는
두둥실 구름만 지나고

이승에서는,
이승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
(차성우·교사 시인, 경남 거창 출생)
+ 하늘나라 풍속

벼랑을 타고 산비둘기집 헐었었고
나무에 올라 까치둥지도 털었었고
처마 밑에 참새 굴도 쑤셔 봤고
강가 풀숲 물새 보금자리도 해쳐봤다오

그들은 엄마 아빠 갓 난 새끼도
모두 한방에 오붓이 살았다오
창고라고는 따로 없었고
몸에는 가방호주머니도 없다오

아무리 맛좋은 청과와 호두알이라도
그 자리서 먹고 남으면 그대로 두고 간다오
욕심 내여 훔치고 숨기는 법 없고
혼자 먹으려 창고에 쌓아두지 않는다오

저마다 먹고 남은 것을 그 자리에 두고 가니
내 앉았던 물가에 와도 먹을 것 있고
남이 놀던 산에 가도 먹을 것 있고
세상 어디가도 먹을 것 흔하디흔하다오

왜 사람들은 욕심 부려 창고에 쌓더냐
도둑은 훔치고 강도는 빼앗고
핵폭탄 전쟁으로 약탈을 하더냐
그러니 세상엔 굶어 죽는 사람 많다오

새들은 매일 하늘나라에 날아다니니
하나님의 정신 잘 배워 왔나보네
산에 들에 어디고 먹을 것 흔한 이 세상
우리 언제 하늘나라처럼 욕심 없이 살랴.
(박유동·시인, 1937-)
+ 천국(天國)

천국은 언제나
나의 주변에서 살랑살랑 맴돌고 있다.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면
길가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어여쁘고

이 세상에 미워할 사람
하나도 없으리니

나의 사랑이 깊어지는 그 만큼
천국은 지상으로 내려오더라.

사랑하는 이들과 손목 한번 마주잡고
다정한 눈길이 스치는 한순간이

지상에서 영원까지
나의 행복한 천국이기를!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곽재구의 ´받들어 꽃´ 외 "> 함민복의 ´그림자´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