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생각
김백겸
쥐똥나무 이파리는 수런거리는 기쁨으로 흔들린다
은행나무 향기에 취한 바람은
햇빛에 심장을 내비치며 걸어온다
구름의 피가 하늘에 가득 번지는
늦가을 오후
나는 화강암의 침묵이 반들거리는
아파트 보도 블록을 걸어간다
조용해라
무심히 지나가는 나비의 숨소리가 가슴에 닿고 있는 이 세상
어디서 술래로 숨었다가 옷자락을 잠깐 보여 주는지
시간의 비단길은 건물 모퉁이를 돌아 길다랗게 뻗어 가고
나는 무릎을 쉬어 구내 벤치 위에 앉는다
저 멀리서 어린날이 양철통을 메고 걸어온다
시골 동구 밖 시냇가 그때 그 자리로부터
너무도 멀리 걸어온 나
예기치 않은 소식을 가지고 오는 우편 배달부처럼
향수는 자전거를 타고 와서 편지를 전한다
우리는 모두 오고 가는 길손들
잠시 쉬어서 보는 이 세상의 조용한 풍경 한가운데
쥐똥나무 이파리는 돌아가는 시간의 구두 뒤축에서
향기로운 꿈으로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