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여름은 정오를 향해 길게 누워 있고
배꼽시계는 맞추어 놓은 알람을 향해
똑깍 똑깍 절름발이 소리를 내며 일어선다
삼 일전 낯선 개 한 마리 끌려와
목살을 질끈 질끈 밟고 있는데
어제 뽑아 버린 뭉툭해진 내 송곳니다
파란 지붕, 금간 항아리 뚜껑,
헝클어진 비닐 빗자루, 목마르다 침을 세운 선인장이
낯설기만 한지 물 한 모금, 밥 한 톨 먹지 않고
짖을 기력마저 잃은 너는 혼 빠진 빈 상자다
말라 비틀어진 개밥그릇 위로
멍한 눈동자는 굳은 밥알로 구르고 있는데
길 앞을 막고 섰는 내 다리는 나무 토막이다
개는 털이 길고 구정물이 줄줄 흐른다
열흘 전만 해도 은빛 머리에 리본을 달고
소파에 누워 오페라를 듣고 있었건만
허리가 굽고 심술로 주름 잡힌 눈썹을 매단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난다 손에는 고추 배 가르던 매운 씨 달린
가위가 들려 있다 순간 불도저 소리가 난다
쿠르릉 쿠르르릉......
개의 등, 이마에는 비뚤빼뚤 불 지른 화전밭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마른 밥알을 쏟아 버리고
물을 붓는다 물 속에 빠진 태양은 컹컹 짖어 보라고
화를 버럭 내지만 개는 귀머거리인 양 장님이 되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사지를 널어 놓는다
개 목에 걸린 사슬은 철떡 철떡 서쪽을 향해
돌린 발길 내 딛지만 감은 눈 속에는
사루비아꽃 가득 피어 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빈 개밥그릇만 엎어져 뒹굴고 있는 오후
이름 석 자 붙여 주고
단 한 번이라도 불러 주지 못한
그 여름 땡볕이 입술을 까맣게 태워 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