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타는 사랑(渴愛)
어제 비가 내리더니
목말라 비슬대던 길가 풀들이
새 순 띄우기 한창이다
하늘과 땅 사이가 화덕처럼 달아오를 땐
추기가 끊겨 땅 거죽에 엉그름만 지더니
몇 방울 비 소식에 들뜬 풀들이
그리도 새실떨며 어깨를 절쑥대고 있다
타들어가던 목마름은
기껏 몇 방울 비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사랑하는 려(黎)!
네가 떠난 후
내 가슴에는 거미줄 같은 실금이 터지더니
기어이 엉그름 생기고 속살이 드러나고 있다
네가 내민 이별의 잔에 남겨진 그리움은
이글거리는 잉걸불 되어
목마름을 태워 내게 안겨 주고 있다
나는 침이란 침은 모두 끌어 모아
입술을 적셔가며 슬픔을 달래보지만
타들어가는 애는 내 속을 숯 검댕이 만들고
목마친 미련은 네 앙가슴만 찾아 허공을 떠돌고 있다
려(黎)!
이제 우리 사랑은 이대로 끝나 가는가
내 가슴에 남겨진 네 자취마저 금이 가버리고
벌어진 틈 매워낼 추기는 긁어모을 길 아득한데
너 돌아온다는 비 소식은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울고 있다
조바심에 떨고 있다
너 떠나면서 남긴 어두움은 아직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
영영 헤어날 기대조차 모을 수 없는 두려움이 온 몸을 휘감고 있다
려(黎)!
몇 방울 비라도 흩뿌려다오
갓밝이 소식이라도 전해다오
오늘도 엉그름진 가슴만 부둥켜안고
너 떠난 길굽이만 뚫쳐다 보고 있다
(후기)
- 추기
축축한 기운
이제/ 태양이 장마진 나의 뜰에서 추기를 거두고/
무지개 새 빛을 강과 묏골에 걸쳐 놓고
새들이 방울진 나뭇잎새에서 노래하며/
나비가 이슬진 꽃송이에서 즐겨 꿈꾸는 날엘지라도/
(김광섭, ′태만의 언어′)
- 엉그름지다
땅바닥이나 진흙 바닥이 매말라서 터져 벌어지다
귀떨어진 쳇바퀴만 들고 논고랑을 훑어도 미꾸라지 우렁
붕어 새우 소쿠리로 건졌건만, 진종일 두고 고랑마다 더투어 봐도
허물 벗은 배암인 듯 잔뜩 엉그름진 논바닥에서는
잔챙이 한 마리 없고,
(김성동, ′國手′)
- 잉걸불
활활 피어 이글이글 타는 숯불이나 장작불
- 새실거리다
조심하지 않고 까불며 자꾸 웃다
- 절쑥대다
원래는 약간 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구상』 시인이 『봄맞이 춤』에서 사용한 이후 들썩대는 모습이나
흔들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전화되고 있다.
수양버들 가지는 자진가락/
앙상한 아카시아도/ 빈 어깨 절쑥대고/
대숲은 팔굽과 다리를 서로 스치며/
스텝을 밟는다
- 애
걱정에 싸인 마음속
애간장
- 목마친
목이 맺혀 떨리는, 목이 매인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남은 떠날 때의 얼골이 더욱 어엽븜니다/
(한용운, ′떠날 때의 님의 얼골′)
- 갓밝이
날이 막 밝을 무렵. 밝을녘. 여명(黎明)
초겨울 갓밝이의 냉기가 차갑게 볼을 할퀴었다. 길가의 낙엽에는 서리가 서려 있고, 나뭇가지에도 상고대가 허옇게 피어 있었다.
(송기숙, ′녹두장군′)
The darkest hour is that before the dawn.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위 말은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어두운 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