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목요일

갑옷

갑곶돈대에 서 있어
싸울 적도 없이
몇 겹의 갑옷을 입었다
살갗에 달라붙어
뼈인 척 하는 것들이다
속옷과 붙어 있어
찬바람 막아주리라
굳게 믿은 것들이다
나도 모르게 적설로 쌓였으니
짐승의 거죽이다
오늘 햇살이 따가워
거추장스런 몸마저 탈피해야 하는데
깊숙하게 갑옷이 박혔다
쇠로 묶여 있어
박물의 협도를 들고
마음을 내려친다
와장창, 유리속에 진열된
유령의 유물이 부서지고
외포리 포구에 배 한 척 떴다
물같이 새같이 흘러가다가
소금밭 석모도에 닿았다
갑옷 사라지고 나니
사리 같은 염만 남았을까
한 걸음 내달려 닿은 보문사에
소금 같은 염불만 들린다
절벽의 마애불이
부서지지 않는 갑옷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