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4일 화요일

가을바람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데,
무에라고 네 마음은 종이 풍지처럼 떨고 있니?
나는 서글프구나 해맑은 유리창아!
그렇게 단단하고 차디찬 네 몸,
어느 구석에 우리 누나처럼 슬픈 마음이 들어있니?

참말로 누가 오라고나 했나?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다가와서,
그리 마다는 나뭇잎새를 훑어 놓고
내 아끼는 유리창을 울리며 인사를 하게
너는 그렇게 정말 매몰하냐?
그렇지만 나는
영리한 바람아, 네가 정답다
재작년 그리고 더 그전 해에도, 가을이 올 적마다
곁눈 하나 안 떠보고, 내가 청년의 길에 충성되었
을때
내 머리칼을 날리던 너는 우렁찬 전진의 음악이
었다
앞으로! 앞으로! 누구가 퇴각이란 것을 꿈에나 생
각했던가?
눈보라가 하늘에 닿은 거친 벌판도 승리에의 꽃밭이
었다
오늘..........
오래된 집은 허물어져 엣 동간들은 찬 마루판 위에
얽매어 잇고,
비열한들은 이상과 진리를 죽그릇과 바꾸어
가을비가 낙엽 위에 찬데.
부지런한 너는 다시 그때와 같이 내게로 왓구나
정답고 영리한 바람아!
너는 내 마음이 속삭이는 말귀를 들을 줄 아니
왜 말이 없느냐?
필연코 길가에서 비열한들의 군색한 푸념을 듣고 온
게로구나!
입이 없는 유리창이라도 두드리니깐 울지 않니?
마음 없는 낙엽조차 떨어지면서, 제 슬픔을 속이지
는 않는다.

짓밟히고 걷어채이면서도, 웃으며 아첨할 것을 잊지
않는 비열한들을,
보아라! 영리한 바람아, 저 참말로 미운 인간들이
땅에 내던지는 한 그릇 죽을 주린 개처럼 쫓지 않
니?
불어라, 바람아! 모질고 싸늘한 서릿바람아, 무엇
을 거리끼고 생각할까?
너는 내 가슴에 괴어 있는 슬픈 생각에도 대답지 말
아라,
곧장 이 평양성의 자욱한 집들이 용마루를 넘어
숲들이 흐득이고 강물이 추위에 우는 겨울 벌판으
로........

겨울이 오면 봄은 머지않았으니까.................


본명 : 임인식(林仁植)
1908년 서울 낙산(駱山) 출생
1925년 보성고보, 졸업 직전에 중퇴
1926년 12월 카프(KAPF) 가입
1928년 <유랑(流浪)>, <혼가(昏街)> 등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
카프 중앙 위원
1929년 박영희의 후원으로 동경으로 떠남. 무산자사(無産者社)에서 활동
1931년 귀국. 카프 1차 검거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불기소 석방
1932년 카프 서기장
1945년 8월 조선 문학 건설 본부 조직, 서기장
1946년 2월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47년 4월 월북
1953년 8월 ´미제 스파이´ 혐의로 사형
시집 : 『현해탄(玄海灘)』(1938), 『찬가(讚歌)』(1947), 『회상 시집』(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