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4일 화요일

사연의 책

사연의 책
항상 단정하시고 자신이 있었던 어머니도 여든 살이 훨씬 넘으시니까 머리가 백발이 되고 말씀이 어눌하시며 모든 일에 소극적이다. 세월 앞에 장사도 못 이긴다는 말처럼 그렇게 당당하시던 어머니도 밀려오는 세월에 고개를 숙이며 따라가고 있다. 다만 낙이라면 가까이 살고 있는 자녀들이 자주 찾아와 웃기며 떠들고 있는 그 순간과 젊었을 때부터 습관이 되어온 독서의 시간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앞날의 내 모습을 거울처럼 보는 것 같아 왼 종일 기분이 찹찹하여 이 책 저책을 뒤적뒤적 하다가 어떤 사람의 기막힌 수기를 택하여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책 속에는 어머니가 있고 내가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갈피갈피마다 써 있다. 나는 책 속으로 들어가며 맘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디 사연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그 사연이 길고 짧다는 것일 뿐이지-.
잠시 눈을 돌려 텔레비전의 아침마당 ˝ 그 사람이 보고 싶다 ˝ 를 보았다. 그 프로그램은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는 기막힌 사연들이 가득 쌓여있다.
어릴 때 부모님과 헤어져 고생고생을 한 사람들은 첫말부터 울음을 터트린다. 대부분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남의 집으로 팔려가는 신세였으며 더러는 길을 잃어버려 고아아닌 고아가 된 사람. 부모에게 버림받아 외국으로 입양된 사람 도 있다. 그러나 가장 비중이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와서 온 가족을 두들겨 패 매 맞는 것이 무서워 도망을 나와 살아온 사람이다. 혈육이 무엇이라고 다 자란 지금에 와서 부모를 찾는지-.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면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엉엉 운다. 참으로 인생은 사연의 연속이다.
30년쯤 되었을까? 서울에 살고 있는 어떤 부자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 주인의 자서전 한 권이 피아노 위에 놓여 있었다. 잠깐 읽어 보았는데 감격스러운 내용이 많이 있다. 나는 그 집 손자를 보고 너희 할아버지는 참 훌륭한 분이라고 하였더니, 그 손자 대뜸 하는 말이 우리 할아버지 책은 돈 주고 남이 썼는데 반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학생이 어떻게 그 책 내용의 반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느냐고 물었다.
사방을 두리두리 살핀 후 ˝ 사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싸울 때 할머니 입에서 폭로 하는 것을 들었어요˝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 이왕 돈 주고 속이려면 완벽하게 하지 제 가족에게도 인정 못 받을 수기는 왜 쓰며, 또 남이 많이 보는 피아노 앞에 왜 놓아두었지( ? !) ˝ 하고는 얼굴을 붉히고 나왔다.
나도 사연이 많기에 한권의 자서전을 쓰고 싶다. 하지만 더 깨져야 된다. 더 가면을 벗어야 된다. 양파껍질 벗기듯이 나를 더 벗겨야 된다.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만---.
산에서 바다를 보고

정영숙
하늘이 살포시 내려 쉼인지
바다가 살포시 뒷 돋음 한 것인지
둘이 하나 되어 긴 호흡 하는 바다

수많은 이야기를 주리주리 소설로 꿰매어
잔물결 큰 파도에 조근조근 들려준다

바다는 조근조근 하는데
파도는 사자 울음을 운다

산이 화다 닥 놀라 큰 눈을 부릅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