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일 일요일

인연 -김재진-

한 세상 입던 옷 벗어놓고 우린 모두
어딘가로 떠나야 합니다.
마당에는 불 켜지고
이모, 고모, 당숙, 조카,
이름도 잊어버린 한순간의 친구들
때묻은 인연들 모여 잔치를 벌입니다.
술잔이 돌고 덕담이 오가고
더러는 떠나는 것을
옷 갈아입는 거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새 옷으로 갈아입기 전 나는 훌훌
가진 것 다 비워내고 빈 몸이고 싶습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헛된 이름인들 남겨서 무엇하겠습니까.
헌옷 벗어 개켜놓고 그렇게
목욕탕에 갔다오듯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시집 <달빛가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