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6일 일요일

김정란의 ´눈물의 방´ 외


<눈물 시모음> 김정란의 ´눈물의 방´ 외

+ 눈물의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서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 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 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 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내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면
그 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김정란·시인, 1953-)
+ 눈물

씨도 없는데
싹도 없는데
어디서 생겼을까
톡, 토독
잘 익은 수과(水果)

통회(痛悔)의 거름 주고
긍휼(矜恤)의 햇살 받아
하늘로 올린 마음
투명하게 손질한

열매
내려 주실 때마다
차오르는 고요한 평화
(김지호·시인)


+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시인, 1913-1975)
+ 눈물

물도 불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슬픔을 가져본 자만이
안다.
여름날
해 저무는 바닷가에서
수평선 너머 타오르는 노을을
보아라.
그는 무엇이 서러워
눈이 붉도록 울고 있는가.
뺨에 흐르는 눈물의 흔적처럼
갯벌에 엉기는 하이얀
소금기,
소금은 슬픔의 숯덩이다.
사랑이 불로 타오르는
빛이라면
슬픔은 물로 타오르는 빛,
눈동자에 잔잔히 타오르는 눈물이
어둠을
밝힌다
(오세영·시인, 1942-)
+ 눈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류시화·시인, 1958-)
+ 눈물도 모른 채

달걀 공장 하루에
두 번 불 끄지, 두 번 알 낳으라고
깻잎 공장 밤에도
불 안 끄지, 깨꽃 피지 말라고
닭들이 죽을 똥 살 똥 알만 낳다 두 배 빨리 늙는 걸
하우스 들깨 꽃 못 피워 시집 못 가는 걸
그런 걸 모르고
달걀 프라이, 삼계탕. 돼지고기에 깻잎
잘도 먹었네 서러운 누군가의 눈물도 모른 채
(김상윤·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 눈물을 위하여

저 오월 맑은 햇살 속
강변의 미루나무로 서고 싶다
미풍 한 자락에도 연초록 이파리들
반짝반짝, 한량없는 물살로 파닥이며
저렇듯 굽이굽이, 제 세월의 피를 흐르는
강물의 기인 그림자 드리우고 싶다
그러다 그대 이윽고 강둑에 우뚝 나서
윤기 흐르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며
저 강물 끝으로 고개 드는 그대의
두 눈 가득 살아 글썽이는
그 무슨 슬픔 그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서면
그대의 묵묵한 배경이 되어도 좋다
그대의 등뒤로 돌아가 가만히 서서
나 또한 강 끝 저 멀리로 눈 드는
멀쑥한 뼈의 미루나무나 되고 싶다
(고재종·시인, 1959-)
+ 눈물 물고기의 사랑

눈물에서만 산다는 물고기
눈물 물고기

눈물이 마르면
곧장 숨을 헐떡이고 마는,

그리하여
상처 지닌 사람들의 가슴만을
찾아 헤매는
슬프고 가련한 무지갯빛 비늘

이제 누구의 가슴으로 갈 것인가
평생토록 물장구 쳐도
다 닳지 않을,

내 안에 눈물 물고기가 산다
그대가 있다
(김현태·시인, 1972-)
+ 눈물에 관해서

몹시 슬프거나 혹은 감격스러울 때
우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납니다

왜 눈에서만 눈물이 나는가요?
귓물도 입물도 아닌 왜 하필이면 눈물인가요?

눈이 다른 감각기관들보다
감정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인가요?

물로 눈을 적셔야 할 이유가 어디 따로 있나요?
보지 말라고 잠시 수막(水幕)을 치는 것인가요?

못 볼 참상을 눈으로 보았기에 눈물이 난다 치면
슬픈 얘기를 귀로 들었다면 귓물이 나야 할 터인데

매운 고추를 먹다가도 입물이 아닌 눈물을 흘리고
아린 양파를 썰다가도 콧물이 아닌 눈물을 흘리지 뭐예요?

눈이 뭐 동네북인가요?
눈의 노조(勞組)가 없기 망정이지

만일 있었다면 얼마나 골치 아프겠습니까?
제대로 울 수도 없는 세상일 테니 말입니다.
(임보·시인, 1940-)
+ 눈물의 힘

눈물로 뱉어낸
목숨들이
눈물로 세운 나라였으니
이 땅 어느 곳에
눈물로 짓지 아니한
그 무엇이 도대체 있으랴

호미로 낫으로 얻어낸
낱알과 열매와 씨앗은 또
눈물이 아니더냐

눈물로
그릇을 만들고
눈물로 밥을 해 먹지 않았는가
눈물로 집을 짓고
눈물로 불을 때지 않았느냐

그 눈물이 잘 익어서
나무 한 그루마다
눈물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 눈물을
논에 밭에 심어놓았더니
한 포기마다
눈물이 그렁그렁 잘도 맺혔다

그 눈물을
한 아름 따다가 칼로 가르는데
피가 솟구친다
그 눈물을
한 바가지 씻어 솥에 안치는데
살이 뜨겁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눈물길

기가 막혔다. 눈물길이 막혔으니….
길은 어디에나 있다고 하더라만,
미처 몰랐다.
눈물에게도 길이 필요한 줄은 정말 몰랐다.
무심코 사는 것도 바빠서
세례만 받고 교회에 안 나가는 신자처럼
눈물의 존재를 잊고 산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곰팡내 나는 일기장을 들추어보니,
´눈물은 나의 신앙´이라는 얼룩진 표현도 눈에 띈다.
가뭄에 메말라버린 골짜기의 저수지처럼
가슴속 밑바닥의 뻘이 드러나면, 그 속은
흉물스러운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을 테지.
이마며 가슴에 환경보호 띠를 두르고
환경 지킴이로 동분서주
개발이냐, 환경이냐를 역설하였는데….
건조주의보의 나이에 들면서
먼 곳의 우포늪은 잘 보여도 정말 가까운
눈물샘은 돌보지 않았다.
고도근시와 난시를 동반한 마른 가슴은
어이없게도 눈물길을 막아버렸다.
물론 수술만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지만,
마음이 담수되지 않고서는
길이 있어도
눈물은 결코 가지 않으리라.
눈물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수몰된 고향과 같은 것.
인생의 이정표에 없는 눈물샘으로 가는 길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좁은 길
잡초에 묻혀 있던 고향 가는 길에 눈물길은 있으리.
(김춘남·시인)
+ 눈물이 완성되는 순간

벽이 쩍쩍 갈라진 임대아파트 아줌마들 모여
인형 눈을 붙인다. 매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새빨개진 눈 비비며
덩치 큰 곰인형에게 눈을 달아준다.

인형에게 눈 주고 반찬값 몇 푼 챙기는
아줌마들의 수다는 실밥 터진 단춧구멍 같아서 방안 가득 뒹구는 인형들 눈에
오래된 별처럼 붉게 터진다.

눈 동그랗게 어디 한번 살아봐라
눈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눈물 없이는 살 수 있는 세상인지

막노동 가는 남편 작업복에, 병든 닭 마냥 학교 가는 자식들 앞가슴에
단물 빠진 껌처럼 눈물 으깨 붙이던 아줌마들 엉덩이 비집고
칠순 어머니, 눈물을 단추처럼 매달고 사신 당신도
가물가물 인형 눈을 붙인다.

눈이 없으면 눈물도 없겠지만 정말 그렇겠지만
눈물이란 한사코 칠이 벗겨지는 않는 생生의 그늘 적셔 반짝, 입 열게 하는
金단추 같은 것이어서

아예 단추 구멍만한 눈물을 달아준다.
눈물을 단추로 채워준다.

반짝, 인형이 웃는다.
눈물로 웃는다.
(김륭·시인, 1961-)
+ 마음껏 슬퍼하라

진정 슬픈 일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니
두려워말고, 큰 소리로 울부짖고 눈물 흘려라,
눈물이 그대를 약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눈물을 쏟고, 소리쳐 울어라.

눈물은 빗물이 되어 상처를 씻어줄 테니,
상실한 모든 것에 가슴 아파하라,
마음껏 슬퍼하라,
온 세상이 그대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상처가 사라지면
눈물로 얼룩진 옛 시간을 되돌아보며
아픔을 이기게 해준
눈물의 힘에 감사할 것이다.

두려워말고, 마음껏 소리치며 울어라.
(메리 케서린 디바인)
+ 참회록

바로 코앞에 들이댄
신문의 글자들이 흐릿할 만큼

몸이
서서히 망가지는

나이 오십 줄에 들어
뒤늦게 벼락같이 깨닫는다

나의 사랑은
긴 세월 가뭄이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몰래 흐르는

새벽 이슬처럼 맑은
그 한 방울의 눈물이 없어

늘 팍팍하게
메마른 이 몹쓸 가슴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고명의 ´촛불의 노래´ 외 "> 허형만의 ´안개´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