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5일 금요일

윤수천의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소금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이왕이면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묻어 두게나
당장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다 추억이 된다네

우리네 삶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즐거웠던 일보다는 쓰리고 아팠던 시간이
오히려 깊이 뿌리를 내리는 법

슬픔도 모으면 힘이 된다
울음도 삭이면 희망이 된다

정말이지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묻고 살게나

세월이 지나고
인생이
허무해지면
그것도 다 노리개감이 된다네
(윤수천·아동문학가, 1942-)
+ 소금밭

나 죽으면
맛으로만 남아라
향기도 색깔도 모양도 버리고
오직 짜디짠 맛
정신으로만 남아라

살아 내 먹장가슴은
나 죽으면
연꽃 눈부신
진흙 못이 되지 말고
향기 황홀한
백합의 골짜기도 되지 말고

삼복 타는 불볕 아래
비로소 살아나는 소금맛 하나로
결단코 썩지 않는
정신의 텃밭 되거라
한 뙈기 소금밭이 되거라.
(유안진·시인, 1941-)
+ 소금

마음 상하지 말라고
아침에 일어나
가슴속에 가득 소금을 뿌리고 나섰다

살아가면서
제 맛 그대로 내고 살 수 없기에
처음처럼 신선한 채 남아 있을 수 없기에
쓰라린 줄 뻔히 알면서도
한 됫박 소금을 푸는 출근길 아침

오늘도 퇴근 무렵이면
간간하게 절은 가슴 위로
삶의 맛이 배어들었겠다
(김지나·시인, 전북 전주 출생)
+ 소금

아주 깊이 아파 본 사람처럼
바닷물은 과묵하다.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픈 것이다.
현무암보다 오래된 물의 육체를 물고 늘어지는
저 땡볕을 보아라.

바다가 말없이 품고 있던 것을
토해낸다.

햇빛이 키우는 것은 단 하나다.
한 방울의 물마저 탈수한 끝에 생긴
저 단단한 물의 흰 뼈들

저 벌판에 낭자한 물의 흰 피들
저것은 하얗게 익힌 물의 석류다

염전에서 익어 가는
흰 소금을 보며 고백한다,
증오가 사랑보다 조금 더 아픈 것이었음을

나는 여기 얼마나 오래 고여
상실의 날들을 견디고 있었던 것일까.

아주 오래 깊이 아파 본 사람이
염전 옆을 천천히 지나간다
어쩌면 그는 증오보다 사랑을 키워 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장석주·시인, 1954-)
+ 소금

왜 굳이
소금을 치는 것일까.
인간의 음식은 소금을 쳐서 먹는다.
김치나 젓갈에
소금을 듬뿍 치는 것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인데
그 무성을 저장할 것이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내장을 소금으로 저리는 것일까.
곰이나 늑대
혹은 꽃이나 풀을 보아라.
그들은 결코
소금을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간이여,
네 밥상의 소금을 줄여야 한다.
슬픔의 저장은 눈물을 만들고
기쁨의 저장은 상처를 만드는 것,
꽃이나 나무의 핏줄에는 고혈압이
없지 않은가.
(오세영·시인, 1942-)
+ 소금에 관하여

부서진 은비늘이 모여
복귀할 수 없는
원시의 수초를 모래밭에 그리는
하얀 눈물자국.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온 결합일 테지만, 미완의 입자들이
손 마주잡고
태양 아래서
날아갈 것은 날아가고
결정을 이룬 무리들이
맛을 낸다.
 
나의 몸이 싱거운 터라
한줌 집어 상처 위로 뿌리니
잊었던 꿈들이
일제히 강줄기 따라
횃불을 밝힌다.
그것은 하얀 불이었구나
피톨이 불을 당겨
곰팡이 홀씨 둥둥 떠다니며
간이나 위, 뼈 위로 꽃피우는
온몸으로
퍼지는 화염
靑靑한 몸이로구나.
(서영효·시인, 1970-)
+ 소금 호수에서- salt lake에서

나는
당신의 소금입니다

항상
짜게 남아 있으려니
쓰라림을 참아야 하고
그래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호수입니다

항상
고요하게 푸르게
깨어 있어야 하니
쉴 틈이 없습니다

사랑은
고달파도 아름다운
소금 호수라고

여기
소금 호수에 와서
다시 듣는 기쁨이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소금꽃 이야기

여기
염전에 말없이 피는 꽃을 보거든
사랑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햇볕과 바람으로만 피는 꽃
오래두어도 변하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달아보라

뙤약볕에 졸아드는 파도 알갱이
수차에 몸을 실어 찰싹찰싹 아픔을 달래더니
소금꽃, 씨앗처럼 여물었다

바닷물 부드러운 출렁임 속에
이렇게 뼈있는 말이 들어있을 줄이야
끝까지 바다이기를 고집하지 않고
때를 알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물의 환희를 보라

죽음으로 거듭난 보석 한줌,
내일은 또 뉘와 더불어 따뜻한 눈물이 될까?
(이소연·시인, 전북 전주 출생)
+ 소금이 온다

염전에 돌래돌래 붙어사는 이들은
반가운 손님처럼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바람 젖어서 물이 흔들리지 않고
햇볕 좋아야 알 굵은 소금이 온단다
불땀 좋은 솥 안의 물처럼
뙤약볕 아래 끓어올라 용도리치는 물결들
묵묵히 잠재워야 소금이 온단다

바람과 바다가 번갈아 말리고씻기고말리고씻기고
소금 속에 들어앉은
한 줌 햇볕의 알갱이를 찾을 때까지

앙금으로 걸러지는 것들
점자처럼 오톨도톨 단단하게 여물어야
나올 수 있다는 듯
오랜 시간 하얗게 영글어간다

글이 되지 않는다며 나선 길,
제 속에 소금 품고 있는 먹빛 바다
경전처럼 가없이 펼쳐진다
깨끗하게 가래질 해놓은 벼루
비로소 건져지는 알 굵은 글씨들

굽은 허리 펴며 싯누런 굵은 이로
들려주는 말
소금이 온다, 야

아! 짜디짠 말씀이 온다
(김윤이·시인, 1976-)
+ 소금의 말

네 손으로 내 몸을 한 움큼
집는 순간
창백한 내 피부에서
해풍에 말려진 쓰린 결정체의
짠 빛을 볼 것이다

삶은 매섭게 짠 것이라고
저물게 깨닫는 단 한번의 경험으로
바다에 닿는 긴 아픔을
깨물게 되리라

너는 원래 소금이었다
내 짠 숨결이
흙으로 빚은 네 몸을 일으킬 때
네 눈엔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의 짠맛이
네 유혹의 단맛을 다스렸다

보라, 파도의 씨눈들이 밟히는
네 영혼의 길에서
하얀 내 유골의 잔해가 빛난다

나를 쥐었다 놓는 그 시간에
한 주먹 내 몸이 흩어지면서
피안으로 녹아 흐르는
절여진 네 목숨의
긴 호흡을 만나리라
(이인평·시인, 1955-)
+ 소금

불면의 시대를 각으로 떠서 우는
부패한 시대를 모로 막아 우는
짜디짠 너의 이름을 소금이라 부르자.

마침내 굴욕뿐인 이승의 현관 앞에서
네가 걸어와야 했던 유혈의 가시밭길
이고 진 번뇌의 하늘 그 또한 얼마였으리.

이제는 지나간 역사의 창이라지만
어느 누가 염치없이 네 이름을 훔치려 하나
소금은 말하지 않아도 제 분량의 영혼이 있다.
(이우걸·시인, 1946-)
+ 소금밭

말이란 절박할 때 하거라
먹을 거 입을 거 넉넉하면 그냥 입 속에 가두어라
들어오는 말이 얼마나 말이 많더냐
세상의 말이란 말 죄다 끌고 와
생의 그물코마다 비벼대는 말의 뒷심은,
허망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이더냐
말의 등을 떠미는 바람은 얼마나 거칠고 매몰차더냐
말하지 않는다고 목숨 놓는 거 아니다
호미 들고 밭고랑 내 발 밑으로 두더지처럼 기어오는 소리
또 귀담아 들으며
쉼 없이 잦아드는 게 어디 말소리뿐이더냐
햇빛이 자근자근 읽고 가는 동안
오뉴월 염전에 눈 내리는 소리 못 들었냐
(허림·시인, 강원도 홍천 출생)
+ 붉은 염전

내게도 인생의 도면이 있었다
갱지 같은 마누라와 방구석에 누워
씨감자 심듯 꿈을 심고 간도 맞추며 살고 싶었다
바닥에 엎디어 넙치처럼 뒹굴며
아들 딸 낳고 싶었는데
돌아다보면 염전 하나 일구었을 뿐
성혼선언문 없이 산 게 문제다
선녀처럼 그녀를 믿은 게 문제다
정화수에 담긴 모든 꿈은 증발하고
외상의 눈금만 술잔에 칼집을 내고 있었다
알았다, 인생이란 차용증서 한 장이라는 것
가슴뼈 한 개 분지르며 마지막 가서야 알았다
소금보다 짠 게 계집의 입술임을
염전에서 바닥 긁는 사내들이여 아는가
슬픔까지 인출해 버린 밑바닥에서
누구의 눈물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계집 등짝 같은 해안에 자욱이 되새 떼 내려
노랗게 우울증 도지는 현실
염전만이 소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 가슴을 후벼도, 아홉 번 씩 태운
소금 서 말쯤 너끈히 나온다는 것
(김평엽·시인, 전북 전주 출생)
+ 소금사랑

소금이 그대 식탁의
영원한 테마이듯이
사랑 또한 내 양식의
영원한 테마이니


소금과 사랑을 섞어
우리
간간한 사랑을 해 보자

슬픔을 녹여
흥건히 바다로 흐르게 하고
기쁨 또한 녹여
바다의 슬픔을 껴안게 하는


썩어 문드러지지 않는
소금 사랑을 해 보자
(강재현·시인, 강원도 화천 출생)
+ 소금꽃

작열하는 태양 아래
고뇌하는 가슴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주워 담아
너른 염전에
가득 펼쳐가며
그대를 기다립니다

파란 파도에 밀려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보며
행여 그대,
그리움에 지친
슬픈 눈빛 향해
웃으며 걸어오려나
애닯게 기다립니다

그대, 보이나요?

그대의 따스한 눈 빛
너무나 보고 싶어
기다리고 기다리다
눈물 마른자리에
바람 지나간 자리에
슬픈 소금꽃
하얗게 피어나고
있는 것을
(김성돈·시인)
+ 소금벌레

소금을 파먹고 사는 벌레가 있다

머리에 흰 털 수북한 벌레 한 마리가
염전 위를 기어간다 몸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연신 소금물을 일렁인다

소금이 모자랄 때
제 눈물을 말려 먹는다는 소금벌레,
소금물에 고분고분 숨을 죽인 채
짧은 다리 분주하게 움직여
흩어진 소금을 쉬지 않고 끌어 모은다
땀샘 밖으로 솟아오른 땀방울이
하얀 소금꽃 터뜨리며 마른다

소금밭이 아닌 길을 걸은 적 없다 일생 동안
소금만 갉아먹다 생을 마감한 소금벌레
땡볕에 몸이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흥얼흥얼, 고무래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비금도 태산 염전의 늙은 소금벌레 여자
짠물에 절여진 세월이 쪼글쪼글하다
(박성우·시인, 1971-)
+ 소금

횡단보도를 지나다
소금 한 봉지를 받았네
구슬픈 색소폰 소리에
무심코 서서
찬송가를 들은 죄로
소금 한 봉지를
선물로 받았네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바람 속에 서서
손바닥 위의 소금을
바라보았지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가서
한 스푼의 소금이
한 스푼의 미소가
되어야 하리
아니아니 그전에 나는
내 삶의 밍밍한 국물에도
몇 스푼의 소금을
풀어야 하리
(홍수희·시인)
+ 소금창고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다.
(이문재·시인, 1959-)
+ 소금에 관한 명상

이른 아침 소금으로 머리를 감아본다
숭숭 열린 머리카락 사이 짠물이 스며들어
바다를 그리는 마음 은빛 길을 만들고 있다
각 진 소금이 둥글게 모를 깎을 즈음
내 몸의 구명이란 구멍은 죄다 열리어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구멍은 커져간다
삼투압을 하는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너저분하고 냄새나는 기억들이 빠져나가며
부황 든 삶의 찌꺼기 방울방울 몰고 간다
소금에 절인 머리 찬물에 헹구면서
지천명 나이에도 오장이 뒤집히는 걸 보면
아직은 씩은 살 도려내는 새순이고 싶은 게다
(김복근·시조시인, 경남 의령 출생)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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