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8일 일요일

박승우의 ´절벽의 소나무´ 외


<소나무 시모음> 박승우의 ´절벽의 소나무´ 외

+ 절벽의 소나무

바위에 못을 박았다
스스로 길을 내며
안간힘으로 박았다
가파른 절벽에
소나무 한 폭
거뜬히 걸어 두었다
(박승우·아동문학가, 1961-)
+ 바위 소나무

골짜기 오솔길에
비스듬히 혼자 버티고 서 있는
작은 바위 소나무

손가락만한 좁은 바위 틈
긁어모아도
한 줌 안 되는 흙

그래도 난 끄떡없어
가느다랗게 뿌리 내렸지만
기쁜 내일이 있어 좋아.

숨찬 솔바람이 몰아치면
가느다란 솔가지를 더 야무지게 세우며
이게 참음이라고 보여 주고

이따금 산새가 찾아오면
초록빛 솔잎에 앉히며
이게 행복이라 일러주고
(김완기·아동문학가)
+ 늙은 소나무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여자를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사랑을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세상을 안다고
늙은 소나무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바람소리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신경림·시인, 1936-)
+ 소나무를 만나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겠거든
산으로 가서 소나무를 만나
말 대신 눈으로 귀를 열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절제하고, 절단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하늘에다 온몸으로 수화하는
나무의 설법에 큰절하고
잘 늙은 소나무가 손짓해 주는
그 곁에 가서 뿌리를 내려라

어느덧 산을 닮아
푸른 자태가 제격이면
(박곤걸·시인, 1935-2008)
+ 소나무·3

나의 텃밭은 버섯
즙은 해독제. 갈비는 땔감
가지는 지팡이로 길잡이가 되었느니라

몸은 기둥과 서까래
결 고운 가구가 되고

나의 체취는 향수. 살은 양식
잎은 떡을 빗고. 진은 껌이 되고

우듬지에서
밑둥치까지 버릴 것 없이
네게 유익을 주었느니라

너를 지키기 위해
우는 사자의 곡성을 지우기 위해
쉼 없이 초음파 소리를 내고

너를 위해 흘린 눈물은
박토를 옥토로 만들지 않았느냐

언제나
너의 본이 되고자

초지일관 낙락장송 된
나의 뜻 어찌 알겠느냐 !
(성지혜·시인, 1945-)
+ 부처님 소나무

목포에서도
멀리 더 멀리
나가 앉은 홍도 단옷섬
절벽엔
소금 바람소리에 키가 자라지 않는
소나무 한 그루 살고 있다.
발 아래엔 풍란 한 포기 키우질 않는다.
빠돌 하나도 거느리지 않는다.
혼자 살고 있다. 친구도 먼 친척도 하나 없다.
저녁때면 이장을 맡은 낙조가
불그름해진 채로 한 번 휘익 돌아보고 갈 뿐
검푸른 바다 들판에
돔, 농어네 가족 희희낙락하는 것
물끄러미 바라보고,
시간이 들여다보고 물러나면
솔잎 옷 어쩌다 갈아입고…
한 번도 ´호젓하다´ 말하지 않는다.

입이 무겁다.
(이영신·시인, 1952-)
+ 겨울 소나무

십 리 길 우체국에
편지 부치러 갔다오던 식전의 언덕길에서
몇 그루의 소나무를 만났다.

항상 무심히 지나쳐보던 그들이지만
배고픈 내가 보아 그런지
그들은 모두 배고파 허기진 사람들 모양이었다.

내가 도회가 싫은 시골 촌놈이라 그런지
그들도 먼 불빛의 도회에서
밀려온 사람들 같았다.

아니면
흉년 든 어느 해 겨울
굶고 얼어죽은 사람들의 원귀들일까?
부황난 사람들의 머리칼일까?

소나무들은 눈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
천년도 더 묵은 울음을 울며
어쩌면 한마디 구성진 콧노래라도
골라내어 부르는 성싶었다.

아침 바람에 내가 허리 시려 그런지
그들도 몹시 허리가 시리운 듯
구부정히 모로 버티어 서 있었다.
(나태주·시인, 1945-)
+ 소나무

솔잎도 처음에는 널따란 잎이었을 터,
뾰쪽해지고 단단해져버린 지금의 모양은
잎을 여러 갈래로 가늘게 찢은 추위가 지나갔던 자국,
파충류의 냉혈이 흘러갔던 핏줄 자국,

추위에 빳빳하게 발기되었던 솔잎들
아무리 더워도 늘어지는 법 없다.

혀처럼 길게 늘어진 넓적한 여름 바람이
무수히 솔잎에 찔리고 긁혀 짙푸르러지고 서늘해진다.

지금도 쩍쩍 갈라 터지는 껍질의 비늘을 움직이며
구불텅구불텅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는 늙은 소나무,
그 아래 어둡고 찬 땅 속에서
우글우글 뒤엉켜 기어가고 있는 수많은 뿌리들.

갈라 터진 두꺼운 껍질 사이로는
투명하고 차가운 피, 송진이 흘러나와 있다.
골 깊은 갈비뼈가 다 드러나도록 고행하는 고승의
몸 안에서 굳어져버린 정액처럼 단단하다.
(김기택·시인, 1957-)
+ 소나무의 옆구리

어떤 창에 찔린 것일까
붉게 드러난 옆구리에는
송진이 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단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기어가던 개미 한 마리
그 투명하고 끈적한 피에 갇혀버린 것은
함께 굳어가기 시작한 것은

놀라서 버둥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춘 개미,
그날 이후 나는
소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제 목숨보다도 단단한 돌을 품기 시작한
그의 옆구리를 보려고

개미가 하루하루 불멸에 가까워지는 동안
소나무는 시들어간다
불멸과 소멸의 자웅동체가
제 몸에 자라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희덕·시인, 196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법정 스님의 ´물처럼 흘러라´ 외 "> ´평화의 기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