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0일 토요일
김남주 시인의 ´학살2´ 외
<5·18 광주민중항쟁 시 모음> 김남주 시인의 ´학살2´ 외
+ 학살2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김남주·시인, 1946-1994)
+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일어섰다 분노한 사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파괴된 인간이 내지르는 최후의 절규와 함께
그것은 총칼의 숲에 뛰어든 자유의 육탄이었다
그것은 불에 달군 철공소의 망치였고
그것은 식당에서 뛰쳐나온 뽀이들의 식칼이었고
그것은 술집의 아가씨들의 순결의 입술로 뭉친 주먹밥이었고
그것은 불의의 대상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서는 풀잎으로
풀잎은 학살에 저항하는 피의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피의 학살과 무기의 저항 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광주 1980년 오월의 거리에는!
(김남주·시인, 1946-1994)
+ 아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 십자가여.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도시여.
호남의 광주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요?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져서
어디에 가 파묻혀 있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들은
또 어디에 눈을 뜬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어디에서
찢어져서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산산이 흩어졌나?
꽃떼들도 나비들도 흩어져버린 광주여.
호남이여.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너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광주여. 불사조여.
남도의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 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려들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쓸망정
광주여,
이 나라의 민주화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넘어 삼천리 언덕을 넘어가는
온 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조국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죽어버렸나.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지금 우리들은 다만 쓰러져서
울어야만 하는가요?
공포와 목숨 어떻게 숨을 쉬어야만 하는가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 서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자.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나라의 민주화를 짊어지고
삼천리 구비구비 떠도는
조국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한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튼튼하구나.
아, 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만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 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쳤다.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시인, 1948-)
+ 광주에 바치는 노래
1.
그해 5월
광주는 달도 밝았다
호남선 특별열차로
헬리콥터로 떼몰려온 흡혈귀들이
온 시가지를 쑥밭으로 만들 때
2.
광주는 그러나
달도 둥그러이 밝았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침략자와 같은 몽유병자들이
피에 굶주려 날뛸 때
3.
그해 5월
광주는 끝없는 바다였다
갈매기가 날으고
돛이 오르고
파도가 나는 바다였다
섬, 섬들도 사람들로 울부짖는
4.
그해 5월
광주는 고독한 십자가였다
학살자들이 황구(黃狗)를 그슬리며
시뻘겋게 웃을 때
신부와 스님들도 잡아가서
부랄이 깨져라고 두들겼을 때
5.
그해 5월
광주는 부러진 십자가였다
발가벗겨 내팽개쳐진 부처의 알몸이었다
그러나 그해 5월
광주는 또 다시 ?번이고
치솟아오르는 불사조!
6.
아아, 그해 5월
광주는 달도 밝았다
사람들의 마음이 강물처럼 흐르고
길가의 가로수도 어깨동무 해주고
사람 세상 통일 세상 강강술래였다
7.
총칼뿐인 악마들이
사방팔방 미친 듯이 들쑤셔도
온 시가지가 보리밭으로 출렁이고
사람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이 땅의 갈 길을 향하여
살과 뼈의 깃발을 흔들었다
8.
아아, 그해 5월 광주는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었다
함께 쓰러져 죽으면서도
함께 일어나 살고야 마는
하늘 같은 하늘 같은 펄럭임이 있었다
(김준태·시인, 1948-)
+ 금남로 사랑
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달맞이꽃을 흔들며 날으는 물새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어린애와 나란히 출렁이는 금남로
어머니와 나란히 출렁이는 금남로
아버지와 나란히 쟁기질하는 금남로
할머니와 나란히 손자들을 등에 업는 금남로
할아버지와 나란히 밤나무를 심는 금남로
누이와 나란히 감꽃을 줍는 금남로
금남로는 민들레와 나비떼들의 고향이었다
그리움의 억세디 억센 끈질김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멀리 청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가까이 마을로 찾아가는 길 금남로는
어머니의 젖가슴이었다
우리가 한때 고개를 파묻고 울던 어머니의 하이얀 가슴이었다
(김준태·시인, 1948-)
+ 오월곡(五月哭)
푸르디푸른 조선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젖가슴 잘리고 대포 총칼에 흐트러진 살점으로
낯익은 거리에 피바다로 흐르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근육을
우리를 배반한 것은 백주의 대낮이었습니다
대낮에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
그러나 쓰러진 자는 다시 살아 이렇게 외칩니다
그해에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쓰러진 자의 거대함
상처투성이 목숨의 찬란함 보았는가 그해에
무엇을 보았는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는
목숨 다해 피 철철 흐르는 붉은 태양 보았는가
자유여 가난이여 목숨이여 공동체여
무엇을 보았는가 이 골목 저 신작로에 쌓인 시체더미
그 위로 치솟는
번역이며 총칼의 이빨이며 웃음소리며
보았는가 어둠의 얼굴을 어둠의 정체를
어둠의 개백정을 어둠의 양민학살을
찬란함이여 비린내여 펄펄 살아 뛰는 목숨의 비명소리여
지치고 지친 목숨의 끝
죽음이 끝내 한줌 남은 목숨보다 위대한 시간
쓰러짐이 인산인해로 나뒹구는 피비린내 끓는 학살의 끝
그렇다 우리는
결코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우리들 가난의 힘이 스스로 죽창으로 치솟아
푸르디푸른 하늘을 이루는 것 보았다
우리들 쓰러짐이
정의와 간사한 도배들 확연히 갈라놓는 것 보았다
쓰러지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우리들 가난의 공동체여. 짓밟힘이여, 신음소리여
차라리 목놓아 울부짖을
맨땅이 갈라질 함성소리여
아아 그렇다 우리는
피맺힌 굶주림이 스스로 불끈불끈 솟는 근육을 이루는 것 보았다
피맺힌 것은 분노뿐 아니라 사랑뿐 아니라
굶주린 목숨 그 자체인 것 보았다
그것이 백성임을
그것이 우리임을 보았다
아아 피맺힌 자유, 피맺힌 제3세계여 공동체여
피맺힌 평야, 핏발 서린 눈동자여
아아 피골상접이여 사막이여 위대한 싸움터여
푸르디푸른 조선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젖가슴 잘리고 대포 총칼에 흐트러진 살점으로
낯익은 거리에 피바다로 흐르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근육을
우리를 배반한 것은 백주의 대낮이었습니다
그 대낮에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
(김정환·시인, 1954-)
+ 누이의 헌혈가
사랑하는 오빠
사랑하는 조국의 총칼에 찢겨
오월 푸르름 한가운데가 질퍽이도록
뜨거운 피를 쏟으시다가
뜨겁던 가슴이 식어간다고
우리들의 도시가 외쳐대는 오후에
당신의 곁으로 달려갔어요
피어린 거리를 지나 찾아간
대학병원은
우리들의 주검과 신음으로 출렁대고 있었어요
오빠 보셨지요
제 가느란 팔목에서 흘러나가던 영산강의 마음
저의 꿈은 먼 훗날 착한 지어미
하늘처럼 눈이 맑은 아들 딸 낳아
이 땅의 자유를 지키는 아들이 되고
이 땅의 자유를 사랑하는 딸이 되게 하는 것
그 꿈도 식지 않고 흘러 나가는 것
오빠 보셨지요
지금도 들리는 총소리 총소리
누가 누구의 이름으로
누가 누구의 가슴을 향해
저렇듯 싸늘하게 총을 쏘아야 하나요
아아
귀를 막고 돌아선 해지는 거리에서
젊음이 지는 거리에서
오빠 저는 무등산을 보았어요
뜨거운 산의
몸부림을 보았어요
(김해화·시인, 1957-)
+ 오독
어느 시에서 나는
´화염 속의 내 고향 광주´를
´화엄 속의 내 고향 광주´로
잘못 읽었는데
그렇게 읽길 잘했어
화엄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옆에서 죽는 놈 짠하고 불쌍해서
내 목숨 들이붓고 피 뿜는 짓이 있다면
그것이 화엄 아니겄냐?
그것이 불타는 엄숙함 아니것냐?
(홍헌호)
+ 망월동
언니 오빠들이 봄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무덤 속의 오빠들에게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안경 쓴 할머니가
비를 맞으며
엉엉 웁니다.
무덤 속의 언니가
보고 싶은가 봅니다.
노래 소리를 듣고
무덤 속에서
제비꽃이 피어납니다.
엉엉 우는 소리를 듣고
풀잎들이
할머니 머리를 만져 줍니다.
5.18 묘역에서는
비가 와도
깃발이 펄럭입니다.
(김진경·광주 서석초등학교 4학년)
+ 그리운 남쪽
그곳은 어디인가
바라보면 산모퉁이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우리가 매듭 굵은 손을 모아
여어이 여어이 부르면
여어이 여어이 눈물 섞인 구름으로
피맺힌 울음들이 되살아나는 그곳은
돌아보면 날 저물어 어둠이 깊어
홀로 누워 슬픔이 되는 그리운 땅에
오늘은 누가 정 깊은
저 뜨거운 목마름을 던지는지
아느냐 젊은 시인이여
눈뜨고 훤히 보이는 백일의
이 땅의 어디에도
가을바람 불면 가을바람 소리로
봄바람 일면 푸른 봄바람 소리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곽재구·시인, 1954-)
+ 무등(無等)
山
절망의 산,
대가리를 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 산, 생의산, 희생의
산, 숨가쁜 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황지우·시인, 1952-)
+ 무등산
한 몸이 되기도 전에
두 팔 벌려 어깨를 꼈다
흩어졌는가 하면
다시 모이고
모였다간 다시 흩어진다
높지도 얕지도 않게
그러나 모두는 평등하게
이 하늘 아래 뿌리박고 서서
아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세월 견디었구나
(김규동·시인, 1925-)
+ 당신 가고 봄이 와서
바라보는 곳마다 꽃이요 잎입니다
피는 꽃 피는 잎잎이 다
그리운 당신입니다
당신은 죽어
우리 가슴을 때려 울려
이렇게 꽃 피우고 잎 피웁니다
꽃 피고 잎 피면
이리 마음 둘 데 없는 것은
괴로움만큼이나
훗날 서로 눈물 닦아줄 기쁜 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당신 죽어 재로 뿌려져
시퍼런 강물에 흐를 때
우리 얼굴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서로 바라보며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당신 모습 고이고이 심었었지요
당신 모습이 찬바람 찬서리 지나고
봄이 와
이렇게 꽃 피고 잎 피는 곳
한편 슬프고 한편 기뻐요
커다란 충격이 서서히
잔잔한 그리움과 지긋한 아픔으로 고여 피어나듯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꽃으로 고여 피어나듯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꽃으로 피어나기를
우리들이 기다리는 봄이 오면
우리 가슴 속에서
당신은 꽃으로 걸어나와
우리랑 저기 저 피는 꽃들이랑
봄 빛 돌아오는
저기 저 남산에 꽃산 이루겠지요
저것 보세요
보는 곳마다
걷는 곳마다
저렇게 걷잡을 수 없이
만발하는 꽃과 잎들
누가 다 막고
우리 눈 누가 다 가리겠어요
(김용택·시인, 1948-)
+ 벗들이여 우리는 승리합니다
벗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기는 싸움입니다.
아직은 비록 우리가 소수이고
힘 또한 저들보다 적은 듯하여도
이 싸움은 반드시 우리가 승리하는 싸움입니다.
옳지 않은 자들과의 싸움이므로
거짓된 자들과의 싸움이므로
어쩌면 이미 이기고 있는 싸움입니다.
지금 이렇게 외로운 우리 몇몇만 손을 잡고 있다 해도
결국은 많은 이들이 함께 이 길에 나섭니다.
내 그대들과 만나면
오월 나뭇잎처럼 마음 기쁘게 사래치고
그대들 아름다운 발걸음과 함께 가노라면
정겨운 물소리에 발목을 담근 듯한 것은
우리 반드시 승리하리란 솟음치는 믿음 때문입니다.
벗들이여 그때까지 마음을 잃지 않는
굳은 믿음만이 남았습니다.
그날이 정녕 가벼이 오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오고야 말 그날까지
굳게 잡은 손 놓지 않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벗들이여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하는 싸움입니다.
이미 우리가 이기고 있는 싸움입니다.
(도종환·시인,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