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관한 생각
마음은 쫓기는 자처럼 화급하여도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 흰 이슬 쓰고 있는 푸성귀밭에 서면
저만큼 버려두었던 희망의 낯짝이 새삼
고개 쳐드는 모습에 목울대가 치민다. 애초에
그 푸르름, 그 싱싱함으로 들끓었던 시절의
하루하루는 투전판처럼 등등했지. 그 등등함만큼
쿵쿵거리는 발길은 더 뜨거웠으니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좌중에 놀라,
이미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타협해 버린
연인들처럼, 그렇게, 한번 그르쳐 든 길에서
남의 밭마저 망쳐온 것 같은 아픔은 깊다.
살다 보면 정 들겠지, 아니 엎어지든 차이든
가다 보면 앞은 열리겠지, 애써 눈을 들어
먼 산을 가늠해 보고 또 마음을 다 잡는 동안
세월의 머리털은 하얗게 세어갔으니, 욕망의
초록이 쭉쭉 뻗쳐오르던 억새풀 언덕에
마른 뼈들 스치는 소리는 생생하다. 그 소리에
삶의 나날의 몸살에 다름 아니던 별들은
또 소스라치다 잦아드는 새벽, 오늘도
푸성귀밭에 오줌발을 세우는 것은
한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갑오패 같은 그리움
이토록 질기다는 것인지, 어디서 종은
또 울고 그러면 황급히 말발굽을 갈아 끼우고
잡목에 덮인 저 황토잿길을 올려다보는
마부처럼, 꿈에 견마 잡힌 우리도 뚜벅뚜벅
발길을 떼야 하는 일이 새삼 절실한데
소슬바람은 부는 것이다. 계쩔은 벌써
깊어져, 우리는 또 한발 늦는다 싶을 것이다.
한발 늦는 그것이 다시 길을 걷게 한다면
저 산도 애써 아침해를 밀어올리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