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6일 화요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지은이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 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네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 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증 가장 깊은 곳에 내려 앉은 물 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 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 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하며
스물 두살 앞에 쌓인 술병 먼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게를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