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7일 목요일

그래서 힘이 듭니다[원태연]

그래서 힘이 듭니다

더마시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밀어넣었다

4분도 채 안 되는 노래 한곡에

미친놈처럼 흔들거리는 나를

부숴 버리고 싶었다

아니, 눈물에만 보탬이 되는

잊으려면 잊을 수도 있으나

차마 아까워 그러지 못하는 그 기억들을

부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짜증나는 일을 하다가도 그애 생각을 하다 보면

벌써 그일이 끝났었고

언제 어디서 건 즐거웠던 일들을 생각하며

혼자 웃기도 많이 웃었고

집 전화벨을 두 번 이상 울리게 놔두질 않았고

쇼원도 예쁜 옷을 보면 입혀주고 싶기도 했었고

평범한 행동에도 왠지 특별히 느껴졌었고

나갔다 들어오면 ˝다녀왔습니다˝보다

˝전화 온거없었어˝가 먼저 나왔고

생일이나 의미있는 날이면

선물 때문에 고민도 많이 됐었고

아주 사소한 일 까지 알고 싶어졌었고

시험 기간에도 펜만 들면 그 이름이 써졌고

그 가족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었고

드라마에서 멋진 행동이나 말이 나오면

못 봤었길 바라며 한 번 해봐야지 했었고

만나기로 한 날에는 스포츠 신문 오늘의 운세나

영구차를 찾기도 했었고

그아이를 만나는 일 외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얼굴 먼저 생각이 났고

생각을 했었고

술이라도 한잦 하는 날이면

몇 년 못본 놈처럼 보고 싶어 죽을라 그랬었고...

더 예쁘고 더 괜찮은 애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고

적당히 나를 꾸며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했었고

섭섭한 행동이나 소리에

별 의미 없이 한거란걸 알면서도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하냐 물으며

없는 고민도 만들어 했었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애의 아버지를

장인 어른으로 모시고 싶어 했었고

영어 단어하나 외울 때도

낑낑대는 놈이

사소한 농담까지다 기억하고 있었고

일요일 밤의 대행진보다

둘이 있는게 더 재미있었고

그랬지

그랬었지

그리곤 안녕이었지

준비할 틈도 없이

추억이 되어 버렸지

밀어 넣었던 것만큼 도로 뱉어내고

한숨 한번 쉬고

담배 하나 물고

비틀거리며

사람들 틈 속으로 끼어 들었다

지금 스치는 사람들 처럼

이젠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

너를 떠올리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미친 듯 걷고 있다

내일이면

아니 내일까지도 필요없이

술이 깨면서부터 현실로 돌아오겠지

난 계속 보상 받을 수 없는 그리움을 술로 달래고

넌 그런 나를 가씀씩은 떠올리며

살아가겠지

그러다 보면

우리 얘길

잊고 살 날이 올거야

언젠가 우리 얘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고

그리곤 정말로 안녕 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