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가을산에 내가 와 있다
아직 설익은 단풍이나
산 입구에 늘어선 가로수가 아니라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는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자아를 만나러
또 다른 내가 가을산을 찾았다
나는 시가 무엇인지
한참을 얘기한 것 같은데
한마디도 써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둑해지는 땅거미를 업고 앉아
아, 산은 그 순간에도 시를 읊고 있구나
어떤 이는 시가 어렵다는데
산은 그리 어렵지 않은가 보다
거연遽然히, 시가 쓰이지 않는 날에는
고뇌에 찬 가슴을 움켜쥐고
시린 마음에 고인 눈물
뚝뚝 흘리지 말고
가을산에 올라 산이 되어라
시에 감흥되어
벌겋게 취해 가는 가을산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