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6일 화요일

서정윤의 ´축복´ 외


<죽음에 관한 신앙시 모음> 서정윤의 ´축복´ 외

+ 축복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이 있다는 것.

문득 그 끝에 선
흰 수염의 인자한 얼굴이
웃고 있다.
(서정윤·시인, 1957-)
+ 영혼

어느 날엔가 우리는 배우게 되리
영혼으로 얻은 그 무엇도
죽음이 훔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타고르·인도의 시인이며 철학자, 1861-1941)
+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계속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실 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내 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죽음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곳에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올 것입니다.

우리의 누이, 죽음이여,
환영하노라!
(작자 미상)
+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김소엽·시인, 1944-)
+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하느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제 남은 길이 아무리 참혹해도
다 받아들이고 그 길을 따를 테니
제가 죽을 때 웃고 죽게만 해 주세요.

다른 거는 하나도 안 바랄게요.
그때가 언제라도 좋으니
˝저, 잘 놀다갑니다.˝
맑은 웃음으로 떠나게만 해 주셔요.

저도 제 사랑하는 이들께
삶의 겉돌기나 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을게요.
오직 한가지만 다짐할게요.
우리 죽을 때 환한 웃음 지으며 떠나가자고

˝고마웠습니다. 저 잘 놀다갑니다˝
그렇게 남은 하루하루 남김없이 불살라가자고.
(박노해·시인, 1958-)
+ 그날이 왔을 때

놀이터에서 어린아이가
모래 장난을 한참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 즈음
엄마 목소리를 듣고 손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고 기쁘게 달려가는 모습처럼,
제가 이 세상 삶을 떠나야 할 때
이런 모습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삶 안에서 강한 애착 집착을 보이는
제 모습을 보면
막상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왔을 때
떠나지 못해 울고불고 손놓지 못하면
그 모습 때문에 얼마나 더 아플까...
많이 두렵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은 것처럼
더욱더 사랑할 수 있기를
주님께서 온통 내 안을 차지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작자 미상)
+ 오 로사리오

오 로사리오,
마리아가 축복하신
감미로운 구슬

우리를 하느님과 만나게 하고
천사들과 하나 되게 이어주는
사랑의 고리

지옥의 공격에 맞서는
구원의 탑

모든 난파선에 안전한 항구인
너에게서 나 이제 더 이상
벗어나지 않으리라.

죽음의 순간에
너는 우리의 힘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삶의 마지막 입맞춤을
너에게 바치리라.
(바르톨로 롱고)
+ 마지막 손님이 올 때

올해도 많은 이들이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주님
눈물의 샘이 마를 겨를도 없이
저희는 또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떠난 이들의 쓸쓸한 기침 소리가
미루어둔 기도를 재촉하곤 합니다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올 손님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아직 살아 있는 저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헤아려 볼뿐입니다.
그 낯선 얼굴의 마지막 손님을
진정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까요?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가
상상보다는 어렵더라는
어느 임종자의 고백을 다시 기억하며
저희 모두 지상에서의 남은 날들을
겸허하고 성실한 기도로 채워가게 하소서

하루에 꼭 한번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화해와 용서를 먼저 청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깨어 있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지혜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당신의 은총 없이는
죽음맞이를 잘할 수 없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저의
믿음 또한 깊지 못해
깊은 회개를 미루는 저희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을
오늘도 함께 봉헌하며 비옵니다.

삶과 죽음을 통해서
빛과 평화의 나라로
저희를 부르시는 생명의 주님
당신을 향한 날마다의 그리움이
마침내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부활의 기쁨으로 열매맺게 하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화려하게 꽃피는 봄날이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이 되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사고나 실수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허락하신 삶을 다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하늘은 푸르고 맑아
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한 날이 되게 하소서

늙어감조차 아름다워 추하지 않고
삶을 뒤돌아보아도 후회함이 없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
쓸데없는 애착이나 미련이 없게 하소서

병으로 인하여 몸이 너무 쇠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기력이 있고 건강한 때가 되게 하소서

나의 삶에 맡겨주신 달란트를 남기게 하시고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살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주님의 구원하심과 죄의 용서하심과 사랑을
몸과 영혼으로 확신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가족들에게 웃음 지으며
믿음으로 잘 살아가라는 말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게 하소서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 고요히 기도 드리며
나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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