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6일 월요일

깨꽃

담벼락 아래 모퉁이
빈 터에 꽃씨를 심어놓고
한 해 다가도록 무심했는데
꽃대 쑤욱 허공을 밀고 올라가면서
총상의 꽃차례로
깨꽃이 핀 줄을 몰랐네
저 불 같은 꽃이 앙심을 품고
팔을 뻗어 나를 붙잡아
다비茶毘시키려는 것 아닌가
손길 뿌리치며 달아나는데
참 미안하지만 참깨꽃 닮은
깨꽃에는 깨가 없더라
참 안타깝지만 전화戰禍에 찢어진
화상火傷 같은 향기만 가득하더라
새벽부터 밤중까지 참깨 털어 팔아도
배만 고픈 어제가 생각이 나서
참깨도 아니 열리는
깨꽃 구경할 수가 없더라
그냥 너, 머리 붉은 모습이
불 같은 시절이 길어서
살과 뼈 다 타버리고
향만 짙게 남은 누구와 닮았다고
눈 감으며 자꾸 추억에 잠기는데
누가 깨를 볶는지
깨꽃 향기가 나를 흔들어 깨우네
어느새 불이 붙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