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7일 토요일

가을 窓 -김 명순-

먼 산으로 피는 붉은 오로라
황금 비늘 같은 이파리하나 없이
슬픔의 귀밑처럼 바람이 분다.
이편의 나무가 추울수록
가을 양지쪽은 눈부시다.
귀 기울여보면 영혼의 깊은 가닥부터
와들와들 떠는 뿌리의 한기
발아래 벌레 먹은 시간들을 가지런히 내려놓은
그네에게 간절한 것은 무엇일까
생의 사소한 조짐들과 애면글면하는 사람들이여
술잔을 들고도 참으로 슬픈 것인가
나무가 천 개의 달빛에게 보내는 간청보다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있는가
마음에서 먼 양지 같은 시간들이
바싹 말라 아무렇게나 떠난다.
아무도 주워 갖지 않는 내 이파리들과
내가 버리지 못하는 너의 이파리들이
차곡차곡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