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7일 토요일

재회 Ⅰ

재회 Ⅰ

늦가을이었네
비둘기색 바지와
단추가 두 개 뿐인
감색마이로 입기로 했네
와이셔츠는 엷게 빛이 나는 하늘색으로
노타이는 웬지 허전해 보여
원색의 프린트 무늬로 타이를 맞추었네
반짝이는 구두보다
복숭아뼈 살짝 올라오는 감색 구두로 신고
양말은 짙은 곤색을 즐겨 신었지만
바지 색깔에 맞추어 회색으로 신었네
두세 가지 향수를 생각하다
웬지 향수보다 비누냄새를 풍기고 싶어
향이 부드러운 비누로 샤워를 했네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줘
왼쪽 눈썹을 살짝 내려오는
오른쪽 가리마를 탔네
그녀의 기억 속에
이제 내 모습은 없어졌네
잘 정돈된 내가 거울 속에서
은빛 바늘시계를 차고 있었네
분명 변한 모습으로
타이를 조였네

이제
비둘기색 바지를 고를 때부터
타이를 조일 때까지
입술을 깨물어야 했던
몇 해전 늦가을부터 준비해 오던
인사말만 생각하면 되는데
그녀가 먼저 해 주었으면 좋겠네
난 너무나 많은 것을 준비했기에
인사말만은
그녀가 먼저 해 주었으면 하네
늦가을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