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1일 토요일

신석정의 ´산´ 외

<산 시 모음> 신석정의 ´산´ 외

+ 산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신석정·시인, 1907-1974)
+ 산

산에는 알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

나무가 알지 못하게
자라고 있고,

흙도 알지 못하게
숨쉬고 있다,

그리고 산은
알지 못하게
우리를 품고 있다
(서동주·시인)
+ 산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산이 어디 안 가고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정희성·시인, 1945-)
+ 숨은 산

땅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를 주워들다가

그 밑에 작게
고인 물 속
산이 숨어 있는 모습
보았다

낙엽 속에
숨은 산

잎사귀 하나가
우주 전체를
가렸구나
(이성선·시인, 1941-2001)
+ 산

말도 못 하는 산
도망도 못 가는 산
그 산을 이길 수 있느냐고
누가 물었어요.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어요.
대신에 우리는
그 산의
친구가 되겠다 했어요.
(임길택·아동문학가, 1952-1997)
+ 함께 사는 집

산은 오르는 게 아니라
손님처럼 천천히 천천히
들어가는 거래요.

산은 나무와 풀과 새들이
함께 사는 집이라
시끄럽게 노래 부르거나
큰소리로 말해서도 안 된대요.

산은, 저 높고 푸른 산은
사람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집이래요.
(서정홍·아동문학가, 1958-)
+ 소멸

산들과 잠시나마
고요히 지내려고
산에 오르면

산들은 저희들끼리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한 점 티끌도 안 보이게
나를 지운다.
(조태일·시인, 1941-1999)
+ 산에 가거든

산에 가거든
그 안에 푹 젖어 보아라
가만히 귀를 대고
산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세상의 모든 언약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는 소리를
산에 가거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풀바람이 되어 보아라
고만고만한 인연들이 모여
제각기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산에 가거든
그 경사진 산맥의 늙은 생애를,
울음소리를 들어보아라
주인 없는 무덤가에 피어난
탄식 같은 햇살 한 움큼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김지헌·시인, 1956-)
+ 산

샘물이 맑다 차갑다 해발 3천 피트이다
온통
절경이다
새들의 상냥스런 지저귐 속에
항상 마음씨 고왔던
연인의 모습이 개입한다
나는 또다시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김종삼·시인, 1921-1969)
+ 산길

산정에서 보면
더 너른 세상이 보일 거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산이 보여주는 것은 산
산너머엔 또 산이 있다는 것이다
절정을 넘어서면
다시 넘어야 할 저 연봉들......

함부로 희망을 들먹이지 마라
허덕이며 넘어야 할
산이 있어
살아야 할 까닭이 우리에겐 있다
(복효근·시인, 1962-)
+ 산 입구의 팻말에 적혀 있는 시

낯선 자여.
만일 당신이 학교가 필요하지 않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진리를 배웠다면,
세상이 죄와 불행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다면,
세상의 슬픔과 범죄와 걱정 근심을 충분히 보았다면,
그리하여 그런 것들이 당신을 지치게 만들었다면
이 산으로 들어와
자연의 품에 안기도록 하라
고요한 그늘이
당신에게도 고요함을 안겨줄 것이며
푸른 잎사귀들을 춤추게 하는 부드러운 바람이
당신의 멍든 가슴에
연고를 발라주리라
(작자 미상)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문인수의 ´10월´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