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등/오영록
나의 조등을 걸어보았다
길 고양이마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조등을 걸고 문상객을 기다렸으나
밤새 바람이 몇 번 흔들고 지났을 뿐
조문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야 했다
눈 부릅뜨고 바동거린 세월이 얼마인데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다니
살아온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니
세상을 잘못 산 것일까
나의 삶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죽음보다 더 차게 다가왔다
그렇게 애면글면 살아온 삶의 유산이
이 쓸쓸한 조등 하나뿐이라면
그저 잠시 세상에 노숙하였을 뿐이라고
조등 앞에선 눈물 보이지 않으리라
그래도 삶의 보답처럼 커튼을 드리워주는 어둠이 있어
나의 조등이 꽃처럼 빛나고 있으니
그것을 한 생 입술 깨물고 산 답례라고 생각하고
가는 길 싱긋 한번 웃고 가면 될 것을
가끔 자신의 조등을 창밖에 걸어보자
그 다음 날 아침은
바람 한 점도 더없이 찬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