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걸어와
알이 통통하게 배긴
저 다리를 좀 보시게나
허벅지 굵은 저 무 좀 보시게나
삼월 초하룻날에는
종로 한복판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하고
유월 이십오일에는
따뜻한 남쪽 바닷가까지
피란을 갔다왔다 하고
팔월 중순에는
감옥을 열고 뛰쳐나가
동네방네 광복을 외쳤다 하고
시월 이십육일에는
한강 넘어온 반란의 군화발에
사정없이 짓밟혔다 하고
했볕 쬐면서 웃었다가
소나기 맞으면서 울었다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른
푸릇푸릇 저 화火를
송두리째 쑥 뽑아 올린다
화들짝 놀라며 소름 잔뜩 돋아난
두터운 살갗 좀 보시게나
십일월도 이제 막바지라
일자一字 같은 무를 뽑을 시간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세상, 김장 좀 해야겠다고
한 시대의 생을 수확할 시간이다
흙 속에 오래 파묻혀 있다가
밖에 나와 눈 번쩍 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