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어머니,무서워요

어머니, 무서워요
저기 성문 밖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려와요
겨울 아침 하늘에 섬뜩한 날빛
오천도 용광로 대장간에서
몇날 몇일 달군 펄펄 끓는 쇳물을 식혀
청동 팔뚝으로 굵은 땀방울이 맺히도록
밤낮 없이 두드려 패서 만든 보름달을 삼킨 저 칼,
아침 햇살 아래 무지개빛 영롱한
홀로 세워두면 검은 빛 도는 검을
누군가 칼집에서 꺼내어
허공에서 파르르 떨고있는 서슬 푸른 날빛을
오래도록 혼자 지켜보다가
절명의 한 순간을 위하여 숫돌에 칼을 갈고 있네요

어머니, 무서워요
온 몸에 갯벌의 진흙을 쳐바르고
숯덩이로 눈섭을 검게 그리고
주사로 입술을 붉게 칠한 잡신 처용을 닮은 망나니가
성문 밖 버려진 들판 역사의 처형장으로 달려와요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내일의 대역죄인을 치기 위하여
오로지 조선 하늘의 푸르른 고혼을 섬기는
온 몸을 허수아비처럼 사방 찢어 날리며
이 나라 숲과 강을 큰 칼로 동서남북 흔들어대며
잠자는 무덤의 풀잎 흔들어 깨우며
병신춤 곱추춤을 추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어머니, 무서워요
화등잔 튀어나온 눈망울에
검푸른 구렛나룻 산적을 닮은 꿈 속의 마왕이
유라시아 대륙 자작나무숲을 거쳐
한반도 서해안 명사십리 솔밭길을 따라
검은 말을 타고 이리로 달려오고 있어요
어머니 나는 그를 모르는 데
그는 나를 잘알고 있다며 나를 납치하려고 해요
마동이가 선화공주를 데려갈 때처럼
궁궐 밖에 온 세상이 들리도록 큰 소리로
선화공주는 임자가 있는 몸이라고
선화공주는 임자가 있는 몸이라고

어머니, 무서워요
저 심상치않게 빛나는 칼을 든 대장장이와
쓰윽 쓰윽 칼을 가는 소리와
휘익 휘익 허공을 스쳐지나가는 칼빛과
왕명의 대역 죄인을 치기 직전
큰 칼로 세상의 강과 숲을 먼저 베며
황무지 들판을 사방 휘어돌며 춤을 추는 망나니와
멀리 시베리아 대륙에서 달려오는 검은 말
등에 바싹 엎드린 채 검은 휘파람 날리는
큰 칼 옆에 찬 검은 복면의 마왕이
모두 한 사람이라고 해요

어머니, 무서워요
내가 달아날 곳은 어디인가요
검은 빛 칼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이슬묻은 풀잎 베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검은 말이 헐떡이며 달리는 소리가 들리지않는 곳으로
부디 나를 숨겨주세요
어머니, 무서워요
아침 저녁 젖어있는 행주치마
세간 살이 부질없는 욕망 떨치고
세상 근심 모두 잠재운 열두폭 옥양목 치마 열어
부디 소중한 딸을 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