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첫사랑 편지

첫사랑 편지

첫사랑은

당신 모습으로 온 주위를 꽃비처럼 쏟으며

눈(眼)으로 다가온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내 눈동자엔 당신의 모습이 들어앉고

당신이 내게 보내는 눈맞춤 편지가 배달된다
당신은 흰 물결 파도처럼 날 모래밭으로 밀어세우고

당신이 다가올 땐 뒤로 물렸다

뒷걸음치는 당신을 따라 달려가게 한다

당신의 푸른 하늘에 실려 내 몸은 둥둥 떠가고 있다

첫사랑은

당신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에도 한사코 의미를 찾으며

귀(耳)를 통해 내 가슴을 채운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숨소리조차 천둥이 되어 당신은 내 귀를 울리고

밀려드는 어지러움은 내 무릎을 꿇린다

당신이 내게 속삭이는 말은 쿵쿵 뛰는 내 심장 고동 소리에 묻혀

의미조차 짜 맞출 수 없도록 찢겨버리고

사랑한다는 내 마음만 터질 듯 헛소리(幻聽)처럼 당신의 말로 번역되어

내 귀를 어지럽히며 가슴으로 달려온다

첫사랑은

내 동정(童貞)을 지켜온 보람에 감격의 불을 당기며

당신의 몸 내음 찾아 지척(咫尺)을 헤매는 코(鼻)를 통해 찾아온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몸 내음으로 감싼 당신은 내 열정(劣情)을 불러들이고

양파처럼 감춰진 당신 안 소식을 한 꺼풀씩 들춰낸다
내 온몸은 당신 향내에 취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하고

붉은 피들은 혈관 속을 휘저으며 막힌 곳을 뚫는다

당신에게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촉각(觸覺)은 모두 일어서서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다

첫사랑은

유리잔에 찍힌 립스틱 흔적에서도 당신이 남긴 장미꽃을 복원해 내며

내 몸을 실어보내고 싶어 안달하는 입술(脣)에 실려온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붉은 입술은 블랙홀처럼 행여 남아 있을

당신께 맞서려는 내 의지마저 빨아들였다 지평선 저쪽으로 던져버린다
당신의 입술은 내 사랑을 확인받는 첫 관문(關門)이기에

내 입은 끊임없이 당신에 대한 사랑의 시(詩)를 읊고

당신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한숨마저 흩어지지 않도록

내 입술을 당신에게 다가가며 주어담고 있다

첫사랑은 그렇게

눈으로 귀로

코로 입술로 쓰는

당신에게 보내는

몸으로 쓰는 편지이다
내 몸은 이제 이글거리는 숯덩이 되어

눈은 귀는

코는 입술은

당신이 보내올 편지에 목매달고 있다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초조함 속에

승천(昇天)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후기)
나이에 관계없이 거듭나면서 시작되는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기에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도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