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첫사랑

첫사랑


그건 나에게

한줄기 번쩍임이었다

내 눈은 번쩍임으로 눈멀고

텅빈 공간 위엔 헛꽃만 떠다니고 있었다
무심한 눈길을 따르며 내 눈맞춤에 목말라하는 주위는

불빛 하나 뚫고 들어올 틈도 찾아내지 못하고

헛꽃에 밀려 번쩍임과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건 나에게

한소리 벽력이었다

내 귀는 벽력으로 귀 멀고

귀울음은 여운을 끌며 귓바퀴 속으로 몸을 숨겼다


조각조각 파편이 된 채 짜 맞추기를 기다리던 기억들은

내 머리 한 자락 끝도 자리하지 못하고

여운에 밀려 벽력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바로 그때부터 일 것이다, 당신은

물안개처럼 내 가슴을 채우며 피어오르고

구름 틈으로 비치는 햇살에 실어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마다 난 팔열지옥(八熱地獄)에 떨어져

열꽃이 돋은 온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당신의 환영을 붙들고 피울음을 토했다

첫사랑은 반드시 처음으로 다가왔던

단 한번의 사랑은 아니다
내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이라면

내 남은 생애의 마지막 사랑이기를 바라는 사랑이라면

사랑을 위해 거듭 태어나고 첫눈에 반한 사랑은

모두 첫사랑이다

당신과의 사랑

당신 아닌 당신과의 사랑

그리고 또 다른 당신과의 사랑은

내 처음 시작했던 사랑은 아니지만
당신과의 사랑을 위해 거듭 태어난 나는

당신을 위해 내 옆자리를 예비하고 있다

아직 살아가야 할 날들이 까마득하게 남아 있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으로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당신과 첫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후기)

유일한 참된 사랑은 처음 보았을 때의 사랑이다
두 번 볼 때에는 사랑은 사라진다

The only true love is love at first sight ; second sight dispels it.

Israel Jangwill이라는 사람의 말입니다

여기서의 첫사랑은 청년기 때 물밀듯 밀려오는
처음 경험했던 열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매번 당신을 볼 때마다 새로워지는 사랑은
당신으로 거듭나는 나에게는 모두 소중한 첫사랑입니다
나는 당신과 첫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팔열지옥(八熱地獄)은
불교에서 말하는 극히 뜨거운 8개 지옥으로
등활지옥(登活地獄), 중합지옥(衆合地獄), 규환지옥(叫喚地獄)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 초열지옥(焦熱地獄)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나뉜다 합니다
딱닥한 한자어라 마뜩치 않으나
적당한 말도 생각나지 않아 그대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