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그리움의 원리

그리움의 원리



실금 터진 가슴에 구멍 생기고 추기 스미더니

물 고이고 한 개 호수가 생겨났다

푸른 하늘이 자리잡고 구름 피어 오르는가

바람에 밀린 잔물결은 꽃잎을 실어 나르고

타오르는 산자락에 얼굴 붉히는가 싶더니

쌓인 눈 쓸어내고 꽁꽁 숨은 결을 찾아내

마음 다듬는 거울을 갈고 있다


언제였더라

이제는 잊혀진 옛 이야기 되어버렸지만

너의 눈짓 너의 흔적 너의 노래는

물 위에 내려앉아 씨 이루고

나의 웃음 나의 한숨 나의 고백은

물 위로 솟아올라 날이 되더니

하, 그리움들이 줄멍줄멍 새끼치고 있었다
그런데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설레임은 그저 한 때 뿐이런가

얼음은 봄살에 제 몸 녹이며 거울에 금을 가르고 있으니

엉그름진 틈으로 빠져나가는 추기라도 막아볼까

엉겁결에 가슴은 문을 닫아걸고 잊어버렸다 그저 잊어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지 몇 겁(劫)이 흘렀는지

망각은 까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이지?

마른 웃음 흘리며 지나치는 몇 조각 구름에

입질에 목마른 양 온몸이 스멀스멀 달아오르고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는지

고개는 못 본 척 못이긴 척 갸웃거리고 있다

몇 년 만의 외출인가 정말 오랜 만의 외출인데……

눈 먼 피라미라도 꾀어 볼까 물을 가르는 낚싯줄은 웃고 있었다
오늘 따라 피라미 하나 얼씬 거리지 않는다

낚이는 건 시간뿐인지 벌써 해가 서산마루를 타고 넘고 있다

손살이 풀어져 그런 거라면 다행이련만

씨마저 보이지 않으니……

밀려드는 허무를 털어 버리려 가슴 열어 젖히다

그만 비바람에 너덜거리며 울고 있는 문까지 열어버렸다

까마아득 잊고 있었는데, 그래 내 가슴에도 호수가 있었지……
또 다른 호수에 낚싯대는 날아가고

그리 기다렸던가,숨 넘어가듯 입질은 시작되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낚이는 건 몇 배 된 슬픔뿐

줄멍줄멍 새끼치던 그리움은 흔적을 감추어버리고

검은 하늘, 먹구름, 너울만 번갈아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곳은 아니었는데 이런 곳은 아니었는데

아스라한 기억만 망연히 분대질하고 있다
산이나 강, 하늘은 휴식을 취하면 취할수록

꽃도 물고기도 새도 늘어나고 아름다워 진다는데

그리움은 왜 그리 잘 토라지는가

찾아보지 않는다 하여 씨는 그리 말려버리는가

수수께끼처럼 다가온 이 의문, 궁구하고 또 궁구하였어라

그리고 그리움은 문 두드리며 닻을 내렸다

그리워하니 그리워 하니 그리움은 저홀로 발 들이밀고 있었다
그리움은 창조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하는가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화수분처럼

호수에는 다시 물이 고이고

둥둥거리며 그리움은 물살을 희롱하고 있다

곧 사랑씨앗이 태어나고 고고성을 울릴 터인데

그래 그리워하자 그리워하자

그리움에 어디 끝이 있겠는가, 끝 있는 그리움이 어디 있겠는가

(후기)
- 추기

축축한 기운
- 엉그름

땅이나 진흙 바닥이 매말라 터져서 넓게 벌어진 틈
- 손살이 풀리다

(맥이 풀리어) 손에 힘이 없어지다
긴장이 없어지다

그 자식은 세상없어도 찾아와야 하올 터이온데 가 있는 곳이나 알아야 찾아봅니까. 이리 생각 저리 생각을 말자 해도 자연 생각이 납니다. 그 생각 날 때마다 천사 만사에 손살이 절로 풀리며 도무지 무심하여지오니
(김용준, ′月下佳人′)
- 분대질하다

수선스럽게 분란을 일으켜 남을 괴롭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