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재미없는 소설책을 밤늦도록 붙잡고 있는 건
비 그친 뒤에도 우산을 접지 못하는 건
짐을 쌌다 풀었다 옷만 갈아입는 건
어제의 시를 고쳐쓰게 하는 건
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돌아누워도 엎드려도
머리를 헝클어도 묶어보아도
새침 떨어볼까요 청승 부려볼까요
처맨 손 어디 둘 곳 몰라
찻잔을 쥘까요 무릎 위에 단정히 놓을까요
은근히 내리깔까요 슬쩍 훔쳐볼까요
들쑥날쑥 끓는 속 어디 맬 곳 몰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속 뒤져보면
그래도 어딘가 남아 있을, 잡초 우거진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에 그대, 들어오겠나요
어느날 문득 소나기 밑을 젖어보겠나요
잘 달인 추억 한술
취해서 꾸벅이는 밤
너에게로, 너의 정지된 어깨 너머로
잠수해 들어가고픈
비라고 내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