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어느 오누이의 ´십자가´를 묵상함 - 강영환의 시 ´별줍기´


<노동절 특집>

어느 오누이의 ´십자가´를 묵상함 - 강영환의 시 ´별줍기´

(주) 대봉(부산직할시 사하구 신평동 499), 신발제조업체(대표 조우준, 45세) 3층 건물 옥상
에서 이 회사 재봉과 미싱공 권미경 씨가 자신의 왼팔에 볼펜으로 유서를 써놓고 만원권 지
폐 2장을 날린 뒤 투신, 30미터 아래 땅바닥에 떨어져 그 자리서 숨졌다. 권씨는 82년 부산
동주여중 야간부 재학중 생활전선에 나갔다. 다음은 그의 왼팔에 쓰여진 유서이다
(1992.12.7, 부산일보)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닌 미경이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속에 묻어 주오
그때만이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權美卿(22, 부산시 서구 아미동 산 19)

벽이 기울어져 있었지
회색으로 칠해진 벽이 어깨가 기울어져
좁은 골목길은 더욱 좁게 보이고
거기에는 별이 있었지
골목길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푸르고 푸른 별
아직은 맑게 빛나고 있는 별
모닥불 같이 따뜻하기만 한 별
손잡으면 눈물 글썽이는 별
가을 들판에 목이 메인 미경이
그리고 순남이, 정식이의 굳센 별
기울어진 벽 모서리에서 다 줍는다
창녕 두메에서 가져온 보리별
함안 벌판에서 가져온 참깨 별
하동 긴 숲에서 반짝이던 콩별
누가 와서 거두어 가 주기를 바라는 별
가슴 설레던 별은 떨어져
차츰 혈색을 잃어가고
별을 놓아버린 빈손
슬픈 눈을 감은 별
눈물 가득한 별을 가슴에 묻는다

「오빠도 비관 자살」
열악한 근무 조건과 인간적 푸대접을 참다못해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공장 옥상에
서 투신 자살한 여성 노동자의 오빠가 동생의 비참한 죽음을 괴로워해 오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11일 오후 6시 30분께 부산 西歐 峨嵋동 2가 天馬山 중턱에서 權洪奇씨(28, 무직, 서구 아미
동 산 19)가 5m 높이의 나뭇가지에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徐모군(15, 초장
중 3년)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권씨의 어머니 朴英愛씨(48)에 따르면 숨진 권씨는 지난 91년 12월 6일 여동생 미경씨(당시
22세)가 인간다운 대우를 요구하며 팔뚝에 유서를 쓴 뒤 자신이 근무하던 부산 沙下구 新平
동 신발제조업체 (주)大鳳 3층 공장 건물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자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동
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갔는데 내가 살면 무엇하느냐며 심하게 비관해 왔다는 것이다. <부산
일보, 1993년 3월 12일 금요일. 23면)

꿈이 있다고 누가 말했을까
이 거리에 또는 저 벌판에
누가 꿈을 남겨 두기나 했는가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쉬고 있는 공구와 연장들만 땅속 깊이
뿌리박고 서서
거리의 눈물, 벌판의 손 시려움
홀로 막고 있다
나는 그것이 눈물인 줄 몰랐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쯤으로
똑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오누이가 남기고 간 눈물이
돌투성이 거대 도시에 새겨 넣고 있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푸른 십자가인 줄
정말로 알지 못했다
가슴 열리지 않는 사람들이
고인돌로 서있는 거리에서
하수구로 그냥 흘러 가버리는 눈물을
나는 눈물인 줄 몰랐다
내가 비석이 되어 서 있는 줄
아무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다
내가 흘린 눈물이 한 뼘
흘러갈 땅이 없으므로
(강영환·시인, 1951-)


´소방관의 기도´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