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나태주 시인의 ´인간 예수´ 외


<예수의 다양한 모습을 묵상하는 시 모음>

나태주 시인의 ´인간 예수´ 외
+ 인간 예수

낮은 자리 앉으므로
높은 자리에 서고
뒷자리에 서므로
앞서 가는 사람
바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풀잎이고자,
눈비 앞에서도
시들지 않는
꽃잎이고자,

끝끝내
사람 하나였으므로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
(나태주·시인)
+ 노파 예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차가 오가는
좁은 시장길가에 비닐을 깔고
파, 부추, 풋고추, 돌미나리, 상추를 팔던
노파가
싸온 찬 점심을 무릎에 올려놓고
흙물 풀물 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목숨을 놓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손
찬 점심을 감사하는
저승꽃 핀 여윈 손
눈물이 핑 도는 손
꽃 손
무릎 끓고 절하고 싶은 손

나는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차옥혜·시인,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 걸인예수

몸 전체가 발이고
바닥이다
잘려나간 무릎 아래
고무튜브 끼고 기어간 자리마다
육즙 흥건하다
전철역 사거리 찬송가 앞세워
구걸하는 바구니에
쨍그랑, 동전 몇 닢 떨어지고
행인의 눈길 잠시 머문다
버러지만도 못한 목숨이라도
생은 축복이라고
온 몸으로 가르치는 걸인예수
밀고 가는 손수레 위에
퇴적층처럼 쌓인
생활의 잡동사니 펼쳐들고
聖과 俗의 경계 너머
난장의 세상 보여 준다

사람들 발길에 밟히고 밟혀
발바닥이 되어버린
느릿느릿 불구의 세월 끌고 가는
길의 지문으로 남은 한 사내
(최춘희)
+ 흑인 예수

길바닥에서 자고 일어나
오가는 행인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저 떠돌이 노인의 쓸쓸하고 텅 빈 얼굴 위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뒤따라온 백인 경찰의 구둣발과 몽둥이에
무수히 짓이겨진 저 니그로 청년의 피멍 든 가슴속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죽어서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머금고 있는
총 맞은 마르틴 루터 킹 그의 두툼한 입술 위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붐비는 저녁 버스
잠든 엄마의 새까만 젖을 물고 두리번거리는
눈빛이 잘 익은 머루알 같은 아기의 맑은 눈 속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사람이 사람의 제 길을
갈 때까지 세상이 세상에서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나비가 나비만의 고운 하늘을 얻을 때까지
그분은 와 계십니다
(이동순·시인)
+ 어머니 예수

교회에 다니는 작은 이모는
예수가 사람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느낀다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다가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
못 박혀 죽을 수 있나, 며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자, 며
어머니의 못 박힌 손을 잡는다
어머니가 못 박혀 살고 있는지
작은 이모는 아직 모른다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도 그 못 박혀 있고
시장 바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걸음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도 그 못 박혀 있다
못 박혀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어머니 못 박혀 살고 있다
평생을 자식이라는 못에 박혀
우리 어머니 피 흘리며 살고 있다
(정일근·시인, ´어머니의 못´)
+ 시인 예수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정호승·시인)
+ 갈릴리의 목수

갈릴리의 목수가 다시금
사람이 사는 거리로 오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 나라에, 모든 시대 시대에
그는 ´인간´이라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우리들은
그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는 문마다 두드리며 말씀합니다.
˝놀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요?
사람을 만드는 목수인 나는
수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힐다 스미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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