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 시 모음>
+ 별과 민들레

파란 하늘 그 깊은 곳
바다 속 고 작은 돌처럼
밤이 올 때까지 잠겨 있는
낮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꽃이 지고 시들어 버린 민들레는
돌 틈새에 잠자코
봄이 올 때까지 숨어 있다
튼튼한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
(가네코 미스즈·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1903-1930)
+ 모래 왕국

난 지금
모래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산도, 골짜기도, 들판도, 강도
마음대로 바꾸어 갑니다.

옛날얘기 속 임금님이라도
자기 나라 산과 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겠지요.

난 지금
정말로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 이상함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파란 뽕나무 잎새 먹고 있는
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
아무도 손대지 않는 박꽃이
혼자서 활짝 펴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에게 물어봐도 웃으면서
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것이.
+ 벌과 하느님

벌은 꽃 속에,
꽃은 정원 속에,
정원은 토담 속에,
토담은 마을 속에,
마을은 나라 속에,
나라는 세계 속에,
세계는 하느님 속에,

그래서, 그래서, 하느님은,
작은 벌 속에.
+ 나와 작은 새와 방울

내가 두 팔을 벌려도
하늘을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 뛰지는 못하지.

내가 몸을 흔들어도
예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예쁘게 울리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를 알지 못하지.

방울과 작은 새, 그리고 나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좋네.
+ 보이지 않는 것

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엇인가가 있다.

연한 복숭아 색 꽃잎이
마루 위에 떨어지며 쌓이고
눈을 떠보면 홀연히 사라진다

그 누구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 누가 거짓이라 말하랴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다

하얀 천마天馬가 날갯짓을 하며
흰 깃으로 만든 화살보다 빠르게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누구도 본 사람은 없지만
그 누가 거짓이라 말하랴
+ 쌓인 눈

위의 눈은
추울 거야.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밑의 눈은
무거울 거야.
몇 백 명이 지나고 있으니.

가운데 눈은
쓸쓸할 거야.
하늘도 땅도 볼 수 없으니.
+ 참새의 어머니

어린애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
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그걸 보고 있었다.
+ 물고기

바다의 물고기는 가엾다.
쌀은 사람이 만들어 주지,
소는 목장에서 길러 주지,
잉어도 연못에서 밀기울을 받아먹는다.

그렇지만 바다의 물고기는
아무한테도 신세지지 않고
심술 한 번 부리지 않는데
이렇게 나에게 먹힌다.

정말로 물고기는 가엾다.
+ 풍어

아침놀 붉은 놀
풍어다
참정어리
풍어다.

항구는 축제로
들떠 있지만
바다 속에서는
몇 만 마리
정어리의 장례식
열리고 있겠지.
+ 초원

이슬의 초원
맨발로 가면,
발이 푸릇푸릇 물들 거야.
풀 향기도 옮아올 거야.

풀이 될 때까지
걸어서 가면,
내 얼굴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날 거야.
+ 내일

시내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
잠시 엿들었다
˝내일˝

시내의 변두리는
저녁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 하루.

웬일인지 나도
즐거워져서
생각이 났다
˝내일˝
+ 흙과 풀

엄마가 모르는
풀 아기들을,
몇 천만의
풀 아기들을,
흙은 혼자서
키웁니다.

풀이 푸릇푸릇
무성해지면,
흙을 숨겨
버리는데도.
+ 별의 수

열 개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어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열 개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별의
수를
세어가자.
언제언제
까지나.
+ 연꽃과 닭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핀다

그리 하는 것은
연꽃이 아니다

달걀 속에서
닭이 나온다

그리 하는 것은
닭이 아니다

그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 깨달음 또한
나의 힘은 아니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가네코 미스즈의 ´모래 왕국´ 외"> 박두순의 ´행복한 하느님´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