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심재기의 ´엄마는 육군 상병´ 외

<어머니에 관한 시 모음> 심재기의 ´엄마는 육군 상병´ 외

+ 엄마는 육군 상병

고운 얼굴 이마에 세 가닥 주름
엄마는 육군 상병

아빠의 술 담배가 한 가닥
말썽꾸러기 내 동생이 한 가닥
공부 않고 컴퓨터만 한다고
내가 그은 한 가닥
셋이서 붙여드린 상병 계급장

지친 몸 눕히시고 코를 고실 때
열심히 가만가만 문질렀지만
조금도 지워지지 않는
상병 계급장
(심재기·아동문학가이며 시인, 1951-)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정한모·시인, 1923-1991)
+ 어머니

할아버지 사셨을 적부터 어머님은 광주리 하나로
살림을 맡았습니다.

설움으로 얼크러진 머리를
손빗으로 가다듬으며
살림의 틀을 야무지게도 짜냈습니다.

봄, 여름은 푸성귀로
광주리를 채우고
가을, 겨울엔 과일로
광주리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 솔껍질 같은 손으로
광주리 한 구석에
내가 기둥나무로 자라기 바라는
기도를 꼭 담곤 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자랐는데도
오늘 아침
어머님은
내 기도가 담긴 광주리를 이고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이창건·아동문학가)
+ 매달려 있는 것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
(신새별·아동문학가)
+ 엄마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좋다.
화나는 일도 짜증나는 일도
´엄마´ 하고 부르면 다 풀린다.

엄마 곁에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무서운 게 없다.
(서정홍·아동문학가)
+ 엄마 품

친구와 멍이 나도록 싸워도
나는 이 서글픈 마음을
보여 주기 싫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 품에 얼굴을 깊이 묻는다.

대회에 꼴등이 돼서 울어도
나는 이 억울한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 품에 얼굴을 감추어
잠에 스르르 빠져든다.

엄마의 품은 마음의 약이다.
서글픈 마음, 억울한 마음
남김없이 없애 버린다.
(전주인·아동문학가)
+ 바보 천사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좋아도
안 좋은 척

맛있어도
맛없는 척

엄마는
엄마는
그렇게
키웠다.
(김원석·아동문학가)
+ 엄마의 등

세벽 네 시 반이면 문을 여는
김밥 가게
가게 주인은 우리 엄마
엄마는 등에 혹이 달린 곱추랍니다
다 일어서도 내 키만한 엄마
김밥 한 줄 꾹꾹 눌러 쌀 때마다
등에 멘 혹이 무거워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의 혹을 살짝 내려놓고 싶습니다
끝내 메고 있어야 할 엄마의 혹 속엔
더 자라지 못한 엄마의 키가
돌돌 말려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도르르 말린 엄마의 키를 꺼내
쭈욱 늘려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꼭 오늘 하루만이라도 곱추등 쫘악 펴고
한잠 푹 주무시게 하고 싶습니다.
(한상순·아동문학가)
+ 엄마

추운 날씨도 아닌데 엄마는
옷깃을 세우고 모자를 눌러썼어요

엄마, 하고 내가 불러도
못 들은 척 바삐 걷고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수업 마치고 나오는 학교 앞길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땅만 보며 걷고 있었어요

끌고 가는 손수레에
공장에 가져다 줄
부업 상자가 실려 있었어요

난 아무렇지 않은데
다 알아요,
친구들 보면 내가 창피할까 봐 그런
엄마 마음
(곽해룡·아동문학가)
+ 밥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이무원·시인, 1942-)
+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동그라미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땅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시인, 1968-)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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