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살아나고 / 서동균
굴참나무에는 신화가 살아 있다
점토판에 새겨진 수메르의 뱀*이
사막의 낮달을 나뭇잎 사이에 걸어 두고
오글오글 껍질째 걸려 있다
조각칼처럼 깊은 계곡을 베어내는 살바람이
자드락비를 투닥투닥 망치 삼아
시간의 아랫부분부터 나이테를 새겨 넣는다
꿈쩍 않는 뿌리가 화석으로 묻히는 계곡
낮곁에 걸린 해에 지친 사람들이
너덜겅으로 걸어 올라간다
강더위에 굴참나무를 오르던 구렁이는
물낯에 탁본된 채 물 위를 건너가고
된비알마다 쑥덕쑥덕 핀 조팝나무꽃은
가슴털이 쌓인 둥지처럼 박새 몇 마리를 품었다
꿈틀꿈틀 차가운 비늘들의 연동운동
푸다닥-
몇 번의 날개짓이 수면 위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유프라테스강에서 쓰러지는 갈대처럼
또 한 차례 낮달이 기울어진다
* 수메르의 뱀 - 수메르문명 창세신화에 나오는 뱀,
이후 다른 문명들의 창세신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현대시학』 2012. 6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