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


빈 들판 추운 가슴에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라
이 다음에 해가 지고 달이 뜨게
불을 놓아라 불을 놓아라
새 해 들어 가득 찬 달
저 달에도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
정월 대보름 햇불을 가지고
어둠 몰아내서 밝은 세상 한 번 보자
주인 없는 저 둥근 보름달이 뜨면
네가 주인이냐 내가 주인냐
이 나라 너와 내가 주인이다
불 같은 달을 움켜쥔 장길산을 보자
논두렁 밭두렁 마른 풀에
누가 누가 더 크게 불을 지르냐
깡통 같은 세상
오래 오래 타도록
솔방울도 넣고 삭장개비도 넣고
숯불로 태우며 불을 돌리자 불을 돌리자
살아 꿈틀거리는 저 불꽃의 장길산을 보자
쥐불이야 쥐불이야
저 불 같이 타오르는 도둑을 보자
소망처럼 연도 하나 날리면서
새로운 땅에 집을 지어 보자고
마른 들판에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라
길산아, 활활 타오르는 저 깡통 속의
세상을 멀리 던져버려라
하늘 아래 불똥이 떨어지고
검은 연기 회오리치듯 떠오르면
골고루 따스한 손길 베푸는 저 달
장길산 얼굴 같은 보름달이 떠오른다
해충도 태우고 잡귀도 내?고
부럼 깨고 달집 태우면서
어깨동무 강강술래 밝은 세상 한 번 보자
노비로 태어난 장길산
저 붉게 타오르는 불 같은 얼굴 한 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