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우연(偶然)

내가 그대라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나
뿌리부터 살을 섞어 타고 올라와
그 절정의 극치로
어느 봄날 나뭇가지에 매달린
푸른 잎사귀 하나가 된 것이
그것이 우연이라고 한다면
퇴락한 어느 화전촌 빈집 마냥
겨울의 입구에 서 있는
그대라는 나무에 지금 막
마지막 이파리로 낙엽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은 나의 필연일 것이다
세상 만나서 마음 나누는 것도 언제나
우연이 지나가며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한몸에서 떨어져 나와
영영 헤어지는 것도 반드시 있어서
하늘의 별도 목숨을 놓고 스러지는 것이다
그렇게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지기는 해도
나는 필연보다 우연을 더 좋아하여
나무와 낙엽으로 그대와 헤어진 다음에
다시 그대와 언제 어느 곳에
무엇으로 만날 것을 약속하였기에
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연을 가장하여
그대와 필연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혹시 비 같은 것이나 눈 같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짓과 내음새 닮은
무언가 오지 않을까 하여
바라보는 눈빛을 멀리서 건네받은
나와 이렇게 만나는 것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우연히 나무처럼 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