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나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  
                              
                                
                                
                                
 
